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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난민 화약고’ 터키 이스탄불… 갈등의 현장 르포

입력 | 2016-08-02 03:00:00

[‘유럽의 화약고’ 중동 난민]<上>‘난민 280만명 터키’ 조동주 특파원 르포
터키인 “일을 뺏겼다” 난민 “노예처럼 일해”
터키내 시리아 난민 280만명 육박… “최저임금 절반도 못받고 비참한 삶”
피해의식 큰 터키인 “네 나라 가라”




조동주 특파원

“저 자식이 터키를 나쁘게 얘기했으면 총으로 쏴 죽일 거야.”

지난달 29일 터키 이스탄불의 시리아 난민타운 파티흐의 카페에서 만난 한 터키인 남성 종업원은 기자가 조금 전 만난 시리아인 동료 종업원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이렇게 소리쳤다. 터키인 카페 주인이 허락한 인터뷰가 못마땅했는지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찼다. 그는 “거짓말을 일삼는 시리아인이 터키에 넘쳐나 혐오스럽다”며 “원한다면 당장 저 자식을 한국으로 데려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삿대질한 시리아 난민 종업원 후세인 씨(27)는 2011년 여름 시리아 내전 초기 알레포 동부지역 도시 할랍을 탈출해 여권 없이 혼자 터키 국경을 건넜다. 지금은 집세가 가장 싼 파티흐 구역 시리아 난민타운에 살며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3시까지 일하고 있다. 그는 사장의 눈을 피해 “쥐꼬리만 한 월급에 일은 무지 많이 시킨다”며 불평을 터뜨렸다.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알란 쿠르디가 내전을 피해 지난해 지중해를 건너다 터키의 보드룸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돼 전 세계를 울린 지 11개월이 지났다. 유럽 국가들은 얼굴을 해변 모래밭에 파묻고 가엾게 죽은 채 발견된 쿠르디를 언론 보도로 접한 뒤 난민에게 문호를 열겠다고 약속했지만 난민 사태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난민 유입에 질린 유럽 국가들이 난민 이동 통로를 꽉 막으며 터키에 눌러앉은 난민은 기본적인 욕구 충족조차 좌절되면서 폭발 직전의 화약고가 되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의 큰 원인이 된 중동 난민은 유럽의 정치·경제 지형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유럽 각국의 선거마다 극우 돌풍을 일으키는가 하면 실업과 복지 문제를 야기하고,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잇따른 난민 테러가 발생하면서 인종 갈등에 종교 갈등까지 확산되고 있다.


● 차별에 우는 막노동 난민… 혐오 키우는 터키인… ‘살얼음 공존’

골목 곳곳 난민들… 아랍어 간판도 지난달 30일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의 악사라이 역 인근 시리아 난민 집단 거주지 일대. 시리아 난민들이 모여 살면서 치안이 나빠진 거리에는 상점 간판이 터키어에서 아랍어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스탄불=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후세인 씨는 1, 2년이면 시리아 내전이 끝날 줄 알고 가족을 부양할 돈을 벌기 위해 이스탄불로 왔지만 6년째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스탄불에 와서 8개월 동안 카펫 세탁 일을 했다. 세탁소 사장이 작은 방 한 칸을 내주고 월급으로 700리라(약 26만 원)를 줬다. 터키 최저임금인 1418리라(약 53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외로운 상황에서 같은 난민을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생활비가 더 필요해지자 사장에게 월급을 올려 달라고 말을 꺼냈다가 바로 해고당했다. 결혼한 지 불과 열흘 만이었다. 마지막 달 월급은 아예 받지 못하고 단칸방에서 쫓겨났다.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터키 국경지대 난민촌에 사는 이들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노예 생활 버금가는 수준의 삶이다. 터키인 동료에게 “일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자 “그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이 일자리는 원래 네 것이 아니다”란 면박을 들은 뒤론 마음의 문을 닫고 지낸다.

그가 사는 악사라이 역 주변은 길거리에 아스팔트가 여기저기 파여 있고 쓰레기가 나뒹굴었다. 낮인데도 어디선가 강도가 금세 나타날 듯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시리아인끼리만 모이는 상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시리아 여자아이 두 명이 “1리라(약 373원)만 달라”며 바지춤을 잡고 늘어졌다. 20대 시리아 여성은 “직장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해 경찰서에 신고하러 갔는데 ‘근로계약서가 없으니 그 직장에서 일한다는 사실 자체를 증명할 수 없다’며 경찰이 돌려보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달 29일∼이달 1일 기자가 찾은 세계 최대 난민 수용국 터키에는 11개월 전 쿠르디의 시신만큼이나 싸늘한 기운이 난민들을 휘감고 있었다. 터키 내 시리아 난민은 2012년 1만 명을 넘지 않았지만 시리아 내전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그리스로 갔던 난민이 송환되면서 현재 28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터키 인구(7970만 명)의 3.4%가 시리아 난민인 셈이다.

한국산 스마트폰을 진열해둔 허름한 악사라이 휴대전화 가게에서 만난 30대 남성은 시리아 다마스쿠스 인근 다라이야에서 1년 전에 징집을 피해 터키로 도망쳐 왔다고 했다. 처음엔 공장에서 막노동을 했고 그나마 엔지니어 대졸자라는 이유로 휴대전화 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대다수 난민은 터키 최저임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월급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스탄불에서 시리아 난민 구호단체 ‘레퓌지 패밀리(난민 가족)’를 운영해온 한국인 원제연 씨(44)는 “열두 살 소년이 월급 300리라(약 12만 원)를 받고 14시간씩 공장 일을 하는 것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들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터키 국민의 차별과 따가운 시선이다. 이스탄불 도심인 갈라타 다리 밑 시민공원에서 만난 터키인들은 “실업률이 10%를 넘는 불황 속에서 이슬람국가(IS)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르는 난민이 터키 국민의 세금으로 주택을 받고 일자리까지 빼앗고 있다”며 자신들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트마무르 씨(22·여)는 “난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업이 없는데 난민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공무원이나 화이트칼라처럼 좋은 직업도 쉽게 구하더라”라며 “정부가 터키인보다 난민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주고 있다. 난민에게 캐비아까지 먹일 기세”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요리사인 쿠르드계 이제트 씨(38)는 “시리아 난민이 오기 전까지는 매달 2250리라(약 84만 원)를 받았는데 요즘엔 1500리라(약 56만 원)밖에 못 받는다”고 푸념했다.

난민 수용을 무기로 유럽연합(EU)에 가입하려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시리아 난민에게 무상 주택과 교육에 이어 지난달 2일 시민권까지 주겠다고 하자 터키인의 반(反)난민 정서는 증폭되고 있다. 문제는 에르도안 정권의 난민 지원책이 허울만 좋은 빈껍데기라는 점이다. 20대 여성 난민인 나왈(가명) 씨는 “터키 집주인이 백인에 금발인 부모를 보고 처음엔 흔쾌히 집을 임대하겠다고 했다가 계약 단계에서 시리아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자 태도가 돌변했다”며 “집 여덟 군데에서 퇴짜를 맞고 가까스로 구했다”고 말했다.

시리아인들의 범죄가 늘어나면서 터키인들은 불안해진 치안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여고생 세빔(가명·17) 양은 “올해 시리아 난민촌인 악사라이 지역에 갔을 때 난민들이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치근덕거렸다”며 “뉴스에서 시리아인이 저질렀다는 성폭행 사건을 자주 접해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31일 벨기에에선 가톨릭 신부가 씻기려고 집에 데려온 무슬림 난민이 금전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했다가 흉기에 찔렸다. 시리아 난민사태 주범인 IS는 ‘서방의 숨은 전사들’에게 기독교도 공격을 촉구하고 가톨릭 수장(首長)인 교황까지 테러 표적으로 지목하며 분노를 자생적 테러로 분출하라고 부추겼다.


이스탄불=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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