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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최우열]우병우의 딜레마

입력 | 2016-08-03 03:00:00


최우열 사회부 기자

“난 배 째라는 놈은 진짜 째준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 우병우 부장검사는 독설을 서슴지 않았다. 2008년 10월경 한국교직원공제회 관련 수사로 검찰에 불려온 과장급 A 씨는 “주요 투자 결정을 내가 다 했다”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절대 윗선을 불지 않겠으니 할 테면 해보라’는 뜻이었다.

당시 기자와 만난 우 부장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노무현 정부 때 유행했던 ‘배 째라’란 말을 농담처럼 던졌다. 그런데 농담이 아니었다. 참고인 신분이었던 A 씨는 곧 피의자가 됐고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그렇다고 그가 윗선을 지켜낸 것도 아니었다. 그해 6월과 10월 두 차례나 영장이 기각됐던 김평수 전 공제회 이사장은 12월 결국 구속됐다. 영장 기각 후 우 부장이 영장전담 부장판사에게 전화해 “어떻게 하면 영장을 발부해줄 거냐”고 묻고 추가 수사를 한 결과다.

그는 검찰 후배들에게도 냉정하고 칼 같았다. ‘우병우 사단’은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만든 것이 아니다. 우 부장 밑에서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으며 고생한 검사들이라는 뜻으로 이미 십수 년 전에 나온 말이다. “우병우에게 배웠다”면 다들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그의 실력과 집념을 인정했다. 그는 재벌이건 정치인이건 수사 관련 민원을 안 들어주기로 유명해, 밉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때도 우 부장 주변엔 적이 많았다. 인정사정없는 수사 탓이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해주는 인정과 덕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가 지방검찰청에 있을 땐 눈물을 흘리며 등 돌린 검사가 나왔고, 대검 중앙수사부 시절엔 수사관들이 “못 살겠다”며 들고일어났다. 그는 뛰어난 검사였지만 덕장(德將)은 아니었다. 원칙을 지키면서도 뒤에서 위아래와 좌우를 살피며 불만과 잡음을 달래고, 조직을 물처럼 잘 흘러가게 하는 능력이 현저히 부족했다. 정치권에선 이런 능력을 ‘정무감각’이라고 부른다.

그런 그가 2014년 5월 대통령민정비서관이 됐고, 작년 1월 민정수석으로 발탁되면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정치에선 기소를 위한 실체적 진실보다, 소문이 실체가 되고 말이 민심이 된다. 처벌과 재단보다는 조정과 통합이 업무의 중심이다. 대통령의 강력한 신임을 받더라도 ‘힘없는 수석’ 코스프레라도 해야 한다. 검찰의 영역과 정치의 영역은 딴 세상이다. “누가 실세다”란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통치권에 균열을 만들고 대통령에게 누를 끼치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우 수석에 대한 온갖 제보와 설(說)이 난무했다. 야당과 각 언론사는 ‘우병우 TF(태스크포스)’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인사 청문 대상도 아닌 청와대 참모에 대한 때늦은 ‘청문회 정국’이 벌어졌다. 여야, 법조 후배 어느 누구도 우 수석을 감싸지 않는다. 도처에 적뿐이다. 이런 사태가 왜 빚어졌는지 우 수석 본인이 깊이 생각해 볼 때다.

최우열 사회부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