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없는 비례대표 5선 대선후보로 감동 못 준다 무모한 대권 도전보다 경제민주화 다듬는 노력을 미국 민주당 버니 샌더스, 힐러리 지지 선언하며 공약 80% 반영시켜
황호택 논설주간
그는 툭툭 던지는 어법으로 두 사람을 배제해놓고 차기 대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선과 관련해 내가 할 일이 있다. … 나라를 위해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현명한지 아니까.” 지난번 대선에서는 킹메이커로 나섰지만 이번에는 킹을 목표로 삼아야겠다는 말로 들린다.
그는 지난번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돕고, 더민주당의 간판으로 이번 총선을 치르며 경제민주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됐다. 경제민주화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보수당인 새누리보다 진보정당인 더민주에 어울리는 브랜드다. 김종인은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에서 경제민주화를 위한 주요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양극화를 해소하고,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며, 빈곤층의 복지수준을 높이자는 의견에 대해 이의를 다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그의 반재벌론은 집중보다 분산이 낫다는 다분히 윤리적 판단에 기초해 대기업을 묶어 놓자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함께 성장해야 한다. 어닝서프라이즈를 실현하는 한국의 대기업들과 달리 ‘중소기업 국가’인 대만은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핀란드와 한국은 경제 규모도 다르다.
양극화나 소득 불평등은 한국만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다. 미국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는 중산층의 붕괴와 청년실업 그리고 서민의 경제난을 파고든 버니 샌더스 돌풍이 일었다. 샌더스는 소득 불평등을 ‘경제적 불의’라고 규정하고 강력한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그의 선거공약은 김종인의 경제민주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다. 최저임금 2배 인상, 부자 증세, 전 국민을 위한 무상의료보험, 공립대학 등록금 무료, 대형은행의 해체를 포함한 월가 개혁….
샌더스의 인기 비결은 ‘정치혁명’에 관한 공약보다도 일관된 신념과 노선에 있다. 그의 부모는 폴란드에서 살다가 이주한 유대계다. 시카고대에 다닐 때부터 청년 사회주의자 연맹에 가담하고 인권운동과 반전(反戰) 활동을 했다.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워싱턴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다”라는 유명한 연설을 할 때 행진에 참여했다. 그는 1971년 정치에 투신한 후 45년 동안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의 편에 섰다. 그의 정치 역정이 민주당 경선에서 열광적인 지지층을 만들어냈다.
샌더스(75)와 김종인(76)은 나이와 정책은 비슷하지만 삶의 이력은 너무 다르다. 샌더스는 정치적 궤적만을 놓고 보면 김종인보다 정의당의 노회찬과 비슷하다. 그러나 그는 무소속이나 군소정당으론 정치개혁 사회개혁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 2015년 민주당원이 됐고 올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샌더스는 경선에서 패배했지만 힐러리 클린턴 지지선언을 하면서 자신의 공약 80% 정도를 클린턴의 공약에 반영시킴으로써 평생 지켜온 정치적 이념을 살려냈다. 김종인이 걸어야 할 길은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킹의 꿈을 툭툭 던져 보는 대권 마케팅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론을 정교하게 다듬어 현실에 접목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황호택 논설주간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