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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승리… 개척자… 이쯤은 돼야 ‘기수의 자격’

입력 | 2016-08-04 03:00:00

각국 ‘선수단의 얼굴’ 키워드




남미 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6일 개회식 때 각국의 국기를 앞세운 기수들의 입장으로 막을 올린다. 개회식 때 자국 선수단의 얼굴 역할을 할 기수들. 왼쪽부터 자흐라 네마티(이란), 유스라 마르디니(난민 선수단), 프란시스코 보사(페루). 사진 출처 IOC·안디나닷컴 홈페이지

6일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히잡을 쓰고 휠체어를 탄 기수가 등장한다. 2012년 런던 패럴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인 이란의 자흐라 네마티(31·여)다. 그는 비장애인과 겨뤄 당당히 리우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다.

개막식에서 선수단을 이끌고 입장하는 기수를 선정하는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다. 하지만 공통된 원칙 한 가지는 있다. 네마티처럼 인간 승리의 아이콘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역사에 남을 업적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처럼 국민들이 참여하는 투표로 기수를 선정하는 나라도 있다.

○ 개척자에게 왕중왕을

이슬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의 기수는 수영 선수인 18세의 나다 알 베드와위다. UAE 여성 선수로는 두 번째 올림픽 참가자이자 수영 선수로는 처음이다. 히잡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이슬람권 국가에서 몸매를 드러내는 수영은 여성이 하기 힘든 운동이다. 베드와위는 기수로 선정된 뒤 “여성 선수를 기수로 세운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막상 내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충격을 받을 정도로 기뻤다”고 말했다.

미국은 그동안 네 차례 출전한 올림픽에서 모두 18개의 금메달을 딴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에게 국기를 맡겼다. 펠프스는 “메달을 땄던 그 어떤 순간보다 벅차고 자랑스럽다”며 기수로 선정된 소감을 밝혔다.

파라과이 기수로 나설 훌리에타 그라나다(30)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 등록된 유일한 파라과이 선수다. 세계 랭킹 154위지만 파라과이에서는 박세리처럼 골프의 선구자 같은 존재다. 자국 국기 대신 오륜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장을 누빌 난민팀의 올림픽 사상 첫 기수로는 시리아 출신 수영 선수 유스라 마르디니(18·여)가 선정됐다. 목숨을 걸고 조국을 등져야 했던 난민팀 선수들은 팀 최연소 선수인 마르디니에게 기꺼이 기수 자리를 내줬다. 마르디니는 독일에서 훈련받았지만 정작 독일어는 거의 할 줄 몰랐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두 마디는 독일어로, 다섯 마디는 영어로 간신히 소통했다”고 말했다. 마르디니를 가르친 스벤 슈파네크렙스 코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강철 정신력이 돋보인다”며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선수”라고 평가했다.

페루의 기수를 맡게 된 프란시스코 보사(52)는 16세 때인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 처음 참가한 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까지 7개 대회 연속 출전했다. 리우 올림픽에서 12년 만에 다시 현역 선수로 사선에 서게 된 보사는 페루 역사상 올림픽 최다 출전 선수가 됐다.

○ 농구 선수는 이제 그만

그동안 중국의 기수 선발 조건은 ‘실력’과 ‘키’였다. 1984년부터 중국은 남자 농구 선수를 간판으로 내세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오성홍기를 들었던 야오밍(36)이 대표적이다. 2002년 미국프로농구(NBA)에 진출할 정도의 실력에 226cm의 키를 겸비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중국 언론들은 “리우 올림픽 기수로는 남성 선수가 아닌 여성 선수가 선정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유력한 후보로 런던 올림픽 2관왕이자 올림픽 다이빙 3연패 위업을 달성한 여성 다이빙 선수 우민샤(31)가 꼽힌다. 우민샤가 기수가 되면 중국의 여름 올림픽 역사상 첫 여성 기수가 된다. 중국의 여성 올림픽 기수는 2006년 토리노 겨울 올림픽에서 기수였던 양양(40)이 유일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