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본질에 대한 성찰, 밀도 높은 언어로 그려내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의 소설 속 주인공은 대개 작가와 학자들이다. 작가는 이들의 작업을 통해 문학 연구와 예술 창작 과정의 미학적 탐색을 소설로 구현한다. 동아일보DB
이 상은 보편적 인간애를 구현한 ‘토지(土地)’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의 문학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박경리문학상은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와 원주시, 동아일보사가 공동 주최한다. 상금은 1억 원.
제4회 수상자는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제5회 수상자는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였다.
올해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종 후보 6명을 최근 결정했다. 수상자는 9월 말 발표할 예정이다.
최종 후보 가운데 첫 번째로 영국 소설가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80)을 소개한다. 고려대 교수인 이남호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이 그의 작품 세계를 분석했다. 》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 소설의 서사와 언어는 밀도가 높다. 지적이기도 하다. 그 단단한 언어의 덩어리는 안일하고 미지근한 독서로는 잘 녹지 않는다. 그러나 깊은 사유에 익숙하고 인내심이 있는 독자에게는 그 단단한 언어의 덩어리를 살살 녹여 먹는 맛이 각별하다. 달리 말해서 바이엇의 소설은 어렵지만 매력적이다.
바이엇은 1936년 영국에서 태어났고,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했다. 대학에서 영국 문학과 미국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1983년 교수직을 그만두고 소설 쓰기에 매진해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영국 문학, 영국 문화와 관련된 사회적 활동 및 비평 활동도 활발히 한 미학적 지성인이다. 그는 20대인 1964년에 첫 소설을 출간했고 중년 이후 더 주목할 만한 문학적 성과를 낸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소유’(1990년)와 ‘천사와 벌레’(1992년)는 40대의 작품이다. 그는 60대 이후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 왔다.
‘소유’는 두 겹으로 된 복잡하고 치밀한 작품이다. 20세기의 문학연구자인 롤런드 미첼과 모드 베일리가 19세기의 시인인 두 남녀의 문학과 사생활을 추적한다. 이러한 두 겹의 연애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적 탐구로 전개되고, 또 한편으로는 추리소설처럼 수수께끼 풀이로 진행되면서 흥미를 더한다. 그 속에는 다시 남녀 관계와 인생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들어 있다. 이 작품에서 특히 돋보이는 점은 두 시인의 창조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시인 랜돌프 헨리 애시와 크리스터벨 라모트가 허구적 인물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작가가 대신 창작한 그들의 시와 편지들은 문학적 개성과 향기와 문제의식이 뚜렷하다. 작가의 상상력과 문학적 재능은 허구적 시인을 진짜 시인처럼 여기게 만든다. ‘소유’는 문학적 지성의 한 정점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바이엇의 작품에는 엄청난 문학 내공이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은 세상 경험으로부터 나왔다기보다는 문학 공부로부터 나왔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 문학 공부는 영국 문학의 전통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문학적 매력과 형이상학적 깊이는 대단하다. 그 대신 거친 호흡과 땀 냄새가 바로 느껴지는, 삶의 맨얼굴과 맨발을 보여주는 문학은 아닌 듯하다.
이남호 고려대 교수·문학평론가
:: 앤토니아 수전 바이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