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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악취는 부취제 탓”… 누출경로-진원지 못밝혀 ‘반쪽 결론’

입력 | 2016-08-05 03:00:00

민관조사 결과 발표 신빙성 의문




‘사인(死因)은 찾았지만 범인(犯人)은 모르겠다.’

350만 부산 시민을 불안에 떨게 한 미스터리 가스 냄새의 원인 규명에 나섰던 민관합동조사단이 내놓은 결과다. 국민안전처, 환경부 등 8개 기관의 직원과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민관합동조사단은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어 “도시가스 등에 주입되는 부취제(附臭劑)나 부취제를 포함한 폐기물이 차량 이동 중에 누출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누출 경로를 밝히는 데는 실패했다. 사인을 찾긴 했지만 범인은 놓친 셈이다.

○ 8일간 조사 뒤 내놓은 ‘반쪽 결과’

지난달 21일 부산 지역에서는 총 25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대부분 “가스 냄새가 난다”는 내용이었다. 일부 시민은 구토 증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 관련 기관들의 초동 대처는 미숙했다. 부산시와 소방당국은 관련 악취 신고와 관련된 매뉴얼이 없어 허둥댔다. 부산시는 가스 누출 가능성을 점검하느라 바빴고 소방당국은 냄새 포집 장비가 없어 증거 확보에 실패했다.

정부는 악취가 발생한 지 엿새가 지나서야 합동조사단을 꾸렸다. 8일간 진행된 조사를 통해 냄새의 원인을 부취제 누출로 결론 내렸다. 근거는 신고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부취제 냄새를 맡은 신고자 37명 중 34명이 당시 맡았던 냄새와 유사하다고 답했다. 또 부채꼴로 확산되는 공장 누출 사고 등과 달리 신고 지역이 해운대구에서 강서구까지 32km가량 길게 분포한 것을 근거로 차량 이동 중 발생한 누출이라고 판단했다.

합동조사단은 정확한 누출 경로를 파악하기 위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고 폐기물 관리 업체를 탐문했지만 결국 의심 차량이나 업체를 찾지 못했다. 단장을 맡은 서용수 부경대 교수는 “운행 중이라 차고지에 없는 차량이나 휴가를 떠나 문을 닫은 업체는 조사하지 못했다”며 “명확한 범죄사실이 없어 압수수색 등 조사에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인명피해가 없는 사고라 원인 규명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미온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악취는 유해화학물질 누출을 1차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환경부(악취방지법, 화학물질관리법), 산업통상자원부(고압가스안전관리법), 국민안전처(위험물안전관리법) 등 관련 법령이 여기저기 나뉘어 있다 보니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인명 피해 없다고 수사 중단한 셈”

부산 시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직장인 서모 씨(38·남구)는 “가스 냄새가 지진과 관련 없다는 걸 강조한 것 말고는 새롭게 확인된 게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전모 씨(45·해운대구)는 “이번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가 예상치 못한 재해에 얼마나 무력한지 알 수 있다”며 “만일 이번 가스로 인명피해가 났다고 하더라도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가스 냄새가 났던 당일 사무실에서 구토 증세까지 보였던 김모 씨(37)는 “부취제가 원인 같다는 얘기는 며칠 전부터 언론을 통해 나왔다”며 “정확한 원인이나 주범을 찾지 못하고 성급하게 조사를 마무리 짓는 이유가 궁금하고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편 합동조사단은 “지난달 22∼26일 울산에서 발생한 악취는 인접한 화학공단에서 나온 이산화황, 황화수소, 휘발성 유기화합물 등이 만든 악취가 남동풍과 저기압의 영향으로 주거지역으로 확산된 것”이라고 밝혔다. 당일 이산화황 등 화학물질 농도가 평소보다 높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 부취제(附臭劑) ::

부취제는 환경오염을 일으키거나 인체에 유해한 물질 또는 폭발성 물질의 누출 여부를 냄새로 감지할 수 있도록 첨가하는 액체다. 보통 ‘가스 냄새’라고 하는 것이 바로 부취제 때문이다.
 
박성민 min@donga.com / 부산=강성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