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펑(朱鋒) 난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
필리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판결문은 중국이 남중국해에 설정한 9단선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9단선 내에 중국이 주장해 온 역사적 권리도 모두 누릴 수 없다고 선언했다.
판결문이 필리핀이 제공한 일방적인 자료에 의한 것이라는 점은 중국이 암초에 시설물을 설치해 생태계를 파괴했다는 주장에서도 알 수 있다. 더욱 황당한 것은 (대만이 실효 점유 중인) 타이핑다오를 포함해 중국이 점유하고 있는 어떤 암초도 200해리 배타적경제수역(EEZ)을 가진 섬은 아니라고 하면서도 일부는 12해리 영해만 가질 수 있다고 한 것이다. 상설중재재판소가 타이핑다오를 섬이 아니라고 판결한 것은 미국과 일본에 기운 대만 차이잉원 총통 정부도 참지 못할 일로 차이 정부는 판결을 ‘승인도 집행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번 판결은 법리상의 결함이 많다. 대표성도 결여돼 있다. 5명의 법관 중 4명은 유럽인이고, 1명은 오랫동안 유럽에서 유학하고 일하고 생활한 캐나다인이다. 5명의 법관은 근본적으로 아시아의 업무에 대해 알지 못하고, 남중국해 주권 분쟁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조금의 이해도 없다. 그들은 다만 추상적인 ‘협약’상의 조문만을 그대로 적용해 판결했다. 그 결과 사실의 적용과 법률의 적용상 매우 단편적으로만 이뤄졌다. 예를 들어 난사 군도의 암초에 대한 지위 판단에 있어 유럽에서 1970년대에 나온 숫자들을 사용했다.
또한 법관 5명의 판결에는 ‘유럽중심주의’ 사고가 농후하다. 오직 ‘유럽의 경험’에 따라 아시아의 해양 주권과 권익의 분쟁을 판단해 배후에 있는 오랜 곡절의 역사를 도외시했다.
남중국해 판결의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이번 판결은 남중국해 주권 분쟁에 국제 사법기관이 개입하는 선례가 됐다. 이 ‘첫 판결’은 당연히 중국과 필리핀 간에 평형을 맞추고, 법리 해석상 유연성을 가져야 하며, 양국 간 분쟁 배후의 역사와 현실을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사법적 판결보다 정치적 고려가 더욱 컸다. 또한 5명의 법관은 분쟁 배후의 역사적 복잡성을 무시하고 아시아의 해양영토 분쟁에 새로운 ‘법률적 모델’을 제시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판결 이후 중국, 미국, 아세안 국가들의 자제로 긴장이 고조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남중국해 문제는 이번 판결문을 건너뛰기는 어렵게 됐다. 중국은 이번 판결을 조건으로 하거나 기초로 한 어떤 담판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일본 호주 필리핀 등은 ‘법률주의’를 내세우며 중국을 제약하는 근거로서 이번 판결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국면이 얼마나 지속되고 어떤 충돌 양상이 나타날지는 각국 정부의 정책뿐 아니라 사회 여론의 동향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주펑 난징대 국제관계학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