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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사상 첫 金’ 역사 쓴 호앙과 한국인 박충건 감독

입력 | 2016-08-07 17:47:00



7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사격센터에서 열린 남자사격 10m 공기권총 결선.

베트남의 호앙 쑤안 빈(42)이 202.5점을 기록하며 정상에 오른 순간 뒤에 서 있던 한국인 스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베트남에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긴 호앙은 스승과 어깨동무를 한 채 “역사적 성과를 달성한 오늘을 잊지 못할 것이다. 특히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로 소감을 말했지만 ‘감독님’이라는 단어는 한국어로 말했다. 그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어 낸 스승은 한국 국가대표 후보팀 감독과 경북체육회 감독 등을 지낸 박충건 감독(50)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이후 베트남 사격대표팀 지휘봉을 잡게 된 박 감독은 “경북체육회 감독일 때 베트남을 방문했다가 호앙 등 베트남 선수 중에 세계적 선수가 될 수 있는 원석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베트남의 사격 환경은 좋지 않지만 지도자로서 도전해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에 따르면 베트남의 정식 사격 선수는 주니어와 성인 선수를 합쳐 2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전자표적을 갖춘 사격장이 없어 올림픽 등 국제대회와 같은 환경에서 훈련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박 감독은 국제 대회를 앞두고 베트남 선수들을 이끌고 한국에서 전지훈련을 실시해왔다.

베트남 육군 대령으로 2006년부터 본격적인 선수활동을 시작한 호앙은 10m 공기권총 세계 랭킹 6위지만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는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10m 공기권총 9위에 그쳤고,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도 7위에 머물렀다. 호앙은 최종 순위가 결정되는 결선에서 욕심을 내다가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날은 “욕심내지 말고 안정적으로 경기를 하라”는 박 감독의 지시를 따른 끝에 진종오(37·kt) 등 강력한 금메달 후보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박 감독은 “호앙에게 결선에서 고득점을 노리지 말고 방어적으로 경기를 하라고 주문한 것이 주효했다. 덕분에 브라질 관중의 소음 등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로 경기를 끌고 갈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박 감독은 “제자가 금메달을 딴 것은 기쁘지만 진종오 등 한국 선수들이 입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 사람인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님이 한국과 독일의 올림픽 축구 경기를 앞두고 ‘지금은 독일보다 한국을 응원하겠다’고 말한 것을 봤다”며 “내게도 같은 상황이 올 수 있을까라고 상상한 것이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한편 ‘깜짝 메달’을 조국에 선사한 호앙은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베트남 공영방송 VTV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격 대회에서 베트남 역사상 가장 값진 메달을 목에 걸었다”고 보도했다. 베트남 방송들은 호앙이 결선에서 금메달을 확정 짓는 순간과 훈련 과정, 어릴 적 모습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베트남 국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시상식에서 베트남 국기가 게양되는 장면을 올리거나, 베트남이 상위에 오른 올림픽 메달 순위표를 올리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이들은 “베트남 국기가 올림픽 메달 시상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을 보니 눈물이 쏟아진다” “세계 스포츠계에 베트남의 존재를 확실히 각인시킨 오늘을 영영 잊지 못할 것 같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리우데자네이루=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정동연 기자 ca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