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빅뱅. 동아닷컴DB
■ 데뷔 10년…케이팝의 중심 된 ‘BIGBANG’
세계 32개 도시 150만명 동원
1억 조회수 뮤직비디오가 4편
연수입 506억원…마룬5 추월
음악 외 다양한 전시회도 준비
군입대 공백 없는 콘텐츠 예고
빅뱅이 데뷔 10년을 맞았다. 데뷔 당시 16∼19세였던 이들은 이제 30대를 바라보는 청년으로 성장했다. 그 사이 케이팝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빅뱅은 바로 그 중심에 서 있다.
● 빅뱅 10년, 케이팝 10년
2000년대 초반 보아와 동방신기가 일본에서 성과를 낸 이후 비가 한국 연예인 최초로 ‘타임 100’에 선정되는 등 아시아를 넘어 미국시장을 파고들면서 케이팝은 비로소 태동하기 시작했다. 빅뱅은 이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케이팝의 영역을 확장해 현재에는 그 대표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빅뱅의 월드투어와 유튜브 조회수는 그 명징한 단면이다. 빅뱅은 2012년 24개 도시를 돌며 80만 관객을 동원했고, 최근에는 13개국 32개 도시, 66회 공연으로 약 150 만명을 동원했다. 아프리카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를 돌았다. 또 ‘판타스틱 베이비’ ‘뱅뱅뱅’ ‘루저’ ‘굿보이’ 등 1억 조회수를 돌파한 뮤직비디오도 4편이나 보유한 유일한 남자그룹이다. 특히 2012년 3월 내놓은 ‘판타스틱 베이비’ 뮤직비디오는 7일 현재 약 2억4077만회로 국내 아이돌 그룹 뮤직비디오 중 최다 조회수다. 빅뱅은 2011년 MTV EMA(유럽뮤직어워드)에서 월드와이드액트 부문 수상을 계기로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가 됐다. 멤버 태양은 “EMA 수상은 빅뱅에겐 터닝 포인트였다. 그때 이후 나온 앨범이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말했다.
● 태생부터 남달랐던 자립형 아이돌
빅뱅은 시작부터 남달랐다. 그룹 멤버를 선발하기 위한 서바이벌 오디션이 요즘은 흔하디흔하지만, 빅뱅 데뷔 당시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YG는 2006년 7월 빅뱅의 예비멤버 6명의 프로필과 노래·랩·춤의 연습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그 데뷔 과정을 리얼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상으로 선보였다. 반향은 컸고, 빅뱅의 성공적 데뷔의 토대가 됐다. 이 과정에서 팬덤을 키우는 효과 외에도, 이들이 프로듀싱 능력을 갖췄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과시하면서 아이돌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바꿔놓았다. 이전까지 아이돌 그룹은 노래와 춤, 랩, 외모 등 멤버마다 ‘역할’과 ‘담당’이 있었지만, 빅뱅은 스스로 곡을 만들고 스타일을 가꿀 수 있는 이른바 ‘자립형 아이돌’로 평가 받았다.
● 빅뱅이 만든 물결, 만들어갈 트렌드
빅뱅이 데뷔한 2006년 가요계는 백지영의 ‘사랑 안해’가 이끈 발라드 열풍, SG워너비와 같은 ‘소몰이 창법’이 대세를 이뤘다. 그래서 빅뱅의 데뷔는 당시로선 ‘실험’에 가까웠다.
빅뱅의 성공 이후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데뷔했고 걸그룹 열풍이 일었다. 남녀그룹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며 케이팝은 ‘한류’의 새로운 물결이 됐고, 사회문화적 가치와 경제효과를 논하게 됐다. 실제로 7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유명인사 100인’에서 빅뱅은 54위에 이름을 올렸다. 작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약 4400만 달러(506억원)를 벌어들였다. 포브스는 “미국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버는 남성그룹 마룬5의 연간 수입인 3350만 달러를 뛰어넘은 것이며,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 못지않다”고 전했다.
이제 빅뱅은 새로운 물결을 준비하고 있다. 작년 지드래곤이 국내외 현대미술작가 들과 함께 200 여점의 설치, 조각, 사진, 페인팅 등 전시회에 참여한 것이 출발점이다.
빅뱅은 멤버들의 크고 작은 ‘사건사고’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좋은 음악으로 이를 극복했다.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위상을 드높여가는 빅뱅은 올해 탑을 시작으로 멤버들의 군입대가 이어지지만, YG 측은 지드래곤, 태양의 솔로음반이 계속해서 나올 것이라며 공백 없는 콘텐츠를 예고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