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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기자의 필담]“다들 내가 ‘순장조’가 될 거라고 했다”

입력 | 2016-08-08 03:00:00

전 인사혁신처장 이근면




공학도 출신으로 민간과 공직 분야에서 40년 가까이 인사 업무를 해온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이제는 공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소양이 모두 필요한 시대다. 인문학적 상상력과 함께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고 했다. 올 6월 사임한 이유에 대해서는 “올인 하다 보니 체력 소모가 컸다. 국정이 지엄한데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해 지체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진영 기자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64)을 만난 건 공직자의 윤리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였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합헌 결정을 받았고, 120억 원대 주식 대박의 주인공 진경준은 검사장으로는 처음으로 구속 기소되고 해임까지 청구됐다.

2014년 11월 삼성 인사통(通)으로 초대 인사혁신처장(차관급)에 발탁돼 공직사회 개혁을 주도하다 6월 돌연 사퇴한 이유가 궁금해 청한 만남이었지만 대화는 진경준, 김영란법으로 시작됐다. 공직자 윤리 담당 부처의 수장(首長)이었던 그는 “공무원윤리헌장을 35년간 창고에 방치해 둔 결과가 진경준 사태이고 김영란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해법인 김영란법에 대해서는 감시사회를 경고한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빗대어 “김영란의 1984”라며 길고도 세게 얘기했다.

“김영란법? 차라리 CCTV를 달지”

―김영란법의 본래 취지는 공무원의 부패를 막자는 것입니다.


“일부 공무원이 문제인데 왜 100만 명 전부를 잠재적 범죄자로 감시하는 법을 만듭니까. 모든 공무원을 야단치고 눈총 주면서 국민을 위해 봉사해 달라고? 이건 이율배반입니다. 언론사와 사립학교 임직원에 그 배우자까지 적용 대상이 400만 명이라지요. 어느 나라가 이런 법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예 개개인에게 CCTV(폐쇄회로 TV)를 달지 그래요. 공무원도 국민입니다.”

―그만큼 공무원 비리가 끊이지 않기 때문이죠.


“잡초 뽑듯 일부 문제 있는 공무원을 솎아내면 됩니다. 그런데 잡초 안 뽑습니다. 배임 횡령한 사람들, 기업에선 어떻게 됩니까. 공직사회에선 용서받고 다 살아 돌아옵디다. (1980년 제정 후 사문화된) ‘공무원윤리헌장’부터 올 1월 1일자로 ‘공무원헌장’으로 개편했습니다. 전 교육 과정에서 교육시키고 있어요.”

―구속력 없는 윤리규정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기독교인들이 주기도문을 왜 매일 외는 걸까요. 아는데 안 하니까 그런 겁니다. 처음부터 봉사하는 자세로 임하는 공직 가치를 심어줘야 합니다. 요즘 공무원이 ‘되려는’ 사람은 많지만 ‘하고자’ 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소명의식 없이 누리려고만 하는 거죠.”

―공무원 비리 방지를 위한 제도 중의 하나가 공직자윤리위원회입니다. 인사혁신처장이 부위원장을 맡지요. 처장 재임 시절 진 검사장의 주식 대박 의혹을 조사했지만 ‘진 검사장의 주식 보유는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결론 내려 부실 검증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공직자윤리위는 (재산 변동 관련) 성실 신고 여부를 따지는 것이지 형성 과정을 들여다보는 게 아닙니다. 그래도 공직자윤리위가 진 검사장이 신고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니 법무부가 알아서 처리하라고 발표한 점은 평가받아야 합니다.”(공직자윤리위는 법무부에 진 검사장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다.)

“정부 인사행정, 40년 제자리”

세월호 사건이 아니었다면 그는 37년간 삼성에서 인사 업무를 맡아 온 민간 전문가로 이력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세월호는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사회의 민낯을 드러냈고, 박근혜 대통령은 “관피아의 폐해를 끊고 공직사회를 개혁하겠다”며 인사혁신처를 신설하고 칼자루를 그의 손에 쥐여주었다. 그는 1년 7개월간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관리제를 도입하고 민간 전문가의 공직 유입 문호를 넓히는 등 다양한 개혁 작업을 주도했다.

―민간 기업과 비교하면 정부의 인사행정은 어떻습니까.


“1960년대엔 민간에서 정부의 인사행정을 배워 갔습니다. 이후 40년간 기업의 인사 업무는 총무과 인사계→인사부 총무과→인재담당 CEO로 조직이 커지면서 인재 경영으로 발전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서무 기능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전엔 사람이 부속품 같은 존재였죠. 요즘 기업들은 개인이 가진 능력의 최대치를 끌어내도록 교육합니다. 기업들이 상향평준화하는 동안 정부는 여전히 하향평준화를 하고 있어요.”

그는 33년간 공직에 있다 퇴직하는 사람과 나눴던 대화를 길게 소개했다.

“퇴직 후엔 뭐 하고 싶으세요?”

“이제 생각해 봐야죠.”

“공직에 있는 동안 가장 오래 한 일이 뭡니까?”

“7년 동안 한 일이 있습니다.”

“그 일로 재취업할 수 있을까요?”

“아뇨.”

“그럼 잘하는 일이 뭡니까?”

“시키는 것 잘합니다.”

그는 “이게 개인 책임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무원들이 시대의 변화에 못 따라가게 한 게 누굽니까. 공무원은 자원이지 소모품이 아닙니다. 인사가 만사라고요? 인사는 만사의 시작이지 끝이 아닙니다. 정부엔 인사만 있지 인사관리는 없었습니다.”

―공직을 맡은 민간 전문가들이 ‘밖에서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공무원들이 우수하더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집단보다 우수한 인재들을 정부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퍼포먼스(성과)는 그렇지 않아요. 우리나라 근로소득자 1650만 명 가운데 150만 명이 정부와 공기업에서 일합니다. 비상장 회사를 포함해 10대 그룹 종업원 수가 90만 명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죠. 이들의 혁신 없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습니다. 이중 국적이 허용됐으니 국민이 정부를 선택하게 될 겁니다. 세금 적게 받고도 행복하게 해주는 정부를 선택하지 않을까요. 정부의 본질에 다가가야 합니다.”

―공무원들의 퍼포먼스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가장 심각한 문제가 1, 2년마다 담당 업무가 바뀌는 순환보직제입니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책임 소재도 불분명해지죠. 민간인 입장에서는 매일 담당자가 바뀌는 셈이지요. 정책의 질과 영속성의 문제입니다.”(그는 지난해 9월 공무원임용령을 개정해 필수 보직기간을 2∼3년으로 연장했다.)

―민간 기업은 다른가요.

“영업 마케팅 인사 등 분야별로 나뉘어 끝까지 갑니다. 흔히 ‘두루 경험한 전문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지금처럼 지독하게 전문화된 사회에선 ‘그것만 판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모든 포지션(자리)을 소화하는 선수는 동네 축구팀에 필요하지 프로팀엔 없습니다.”

―순환보직제는 공무원 비리를 막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인사로 못 막아요. 시스템으로 막아야죠. 범죄는 예방하는 방법과 형무소로 해결하는 법이 있습니다. 제품 검사는 할수록 비용이 늘지만 사전 예방은 할수록 비용이 줄지요.”

이 전 처장은 ‘소극 행정’을 유도하는 감사 제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직사회는 문제가 일어나면 원인을 규명할 생각은 않고 문제를 일으킨 자체를 문제 삼습니다. 그러니 복지부동할 수밖에요. 모든 걸 규정할수록 공무원은 책대로 하게 됩니다. 책대로 할 거면 기계가 하지 왜 사람이 합니까. 창의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이전한 후 공직사회의 경쟁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방으로 이전한 기업들이 모두 망했습니까. 세종시에서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면 됩니다.”

“이제는 학용(學用)의 시대”

―특별한 인재감별법이 있나요.

“난 ‘눈과 말’이 95%입니다. 옛날에 관직에 사람을 뽑을 때 신언서판(身言書判) 네 가지 기준을 적용했는데 그것과 비슷합니다. 우선 첫인상이 중요합니다(身). 그다음이 말하기(言)죠. 여기엔 목소리도 포함됩니다. 개인이 가진 능력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집니다. ‘서(書)’도 표현력에 해당하겠네요.”

―학력(學歷)은 안 보나요.

“학습(學習)이 아닌 학용(學用)의 시대입니다. 인터넷에 다 있는데 익힐 필요는 없죠. 지식이 힘이던 시절엔 이를 측정하기 위한 학력이 중요했지만 지금은 서 말의 구슬(지식)을 꿰는 창의적 사고가 중요한 시대입니다. 종합적 사고, 마니아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삼성에서 배운 건 뭡니까.


“성공한 기업들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기업문화, 비전 그리고 이것을 실현해내는 시스템입니다. 시스템에서 중요한 건 인재죠.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님의 마지막 작품이 1987년 설립한 삼성종합기술원입니다. 미래엔 기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게 될 테니 기술을 개발할 인재를 기르자는 거였죠. 30년 전 기술 인재에 대한 투자가 변방의 삼성을 세계기업으로 만든 겁니다. 우린 30년 후의 집단적 꿈이 있습니까.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 이후 기억할 만한 집단의 어젠다가 있었나요.”

―처장 임명 당시엔 얼마나 오래 할 거라고 예상했나요.

“순장조로 정권 말까지 가는 게 그쪽(임명권자) 희망이었습니다. 언론에서는 다음 정권까지 7, 8년은 해야 (공직사회가) 바뀔 거라는 얘기도 나왔고요.”

―그런데 2년도 못 채우고 그만두셨네요. 6월 24일 퇴임할 때 청와대에선 “건강상 이유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발표했지만 공무원들이 기업식 개혁에 거세게 반발했기 때문이라는 언론 보도도 나왔습니다.

“(약 봉지를 꺼내 보이며) 건강 때문에 자진해서 그만둔 것 맞습니다. 오후 6시면 칼퇴근을 해야 할 만큼 몸이 힘들었어요. 사의 표명은 (4월 13일) 총선 전에 했습니다. 제 인사와 관계된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어요.”

그는 사임 배경을 거듭 묻자 “이번 정권이 끝난 뒤에…”라고 여운을 두면서 재임 기간에 대해 “착점 중 일부가 잘못된 것은 있지만 포석은 깔아뒀다”고 자평했다. 그의 후임으로 공직개혁이란 바둑돌을 잡은 이는 30년간 공직에서 주로 인사 업무를 맡아 온 정통 관료 김동극 처장(54)이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