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종석 기자
‘오이에게.’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특출한 재주나 기술을 가리키는 일본말이다. 일본의 전통 공연 가부키 용어에서 나온 ‘주하치반(十八番·18번)’과 비슷한 의미다. ‘주하치반’은 가부키 최고의 배우로 꼽힌 이치카와 단주로 집안에 전해 내려온 대표작 18편을 일컫던 말인데 ‘가장 뛰어난 장기’란 뜻이다. ‘오이에게’가 스포츠 종목 앞에 따라 붙어 ‘전통적으로 강한 종목’이란 뜻으로도 쓰인다. 일본은 유도나 기계체조 같은 종목이 올림픽에서 ‘오이에게’다. 우리로 치면 ‘메달밭’ ‘효자 종목’ 정도로 보면 된다.
‘양궁이 효자 종목이라고 했지, 내가 언제 메달 못 딴 종목을 불효라고 했나…’ 싶다가도 얼토당토않은 얘기는 또 아닌 것 같았다. 런던 올림픽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다. 대한핸드볼협회 임원이 이런 얘기를 했다. “효자 종목, 효자 종목 소리 듣다가 메달을 못 따니까 선수들이 무슨 잘못이나 한 것처럼 기가 죽어서….”
핸드볼이 어떤 종목인가.
한국이 올림픽 단체 종목에서 첫 금메달을 딴 게 여자 핸드볼이다. 여자 핸드볼은 올림픽에 처음 나간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땄다. 올림픽 때마다 효자 종목으로 거론됐다. 그러다 4년 전 런던에서는 4위를 해 빈손으로 돌아왔다. 효자 종목 소리를 들을 때는 별생각이 없다가 메달을 못 따고 보니 ‘이제는 효자 종목이 아닌 건가. 올림픽 때도 관심 밖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게 임원의 말이었다. 선생님이 공부 잘한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때는 별일 아닌 듯 여겼는데 같은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자니 그렇지가 않더라는 얘기다.
한국의 양궁 같은 종목이 중국에도 있다. 탁구와 다이빙이다. 탁구가 올림픽 종목이 된 1988년 서울 올림픽부터 2012년 런던 올림픽까지 28개의 금메달 중 24개를 중국이 쓸어갔다. 중국에서는 탁구나 다이빙 앞에 ‘우세항목(優勢項目)’이란 말을 붙인다. 드물게는 ‘탈관항목(奪冠項目)’이라는 말도 쓴다. 탈관은 ‘우승을 차지한다’는 뜻이다. 중국에 효자가 없어 ‘효자 종목’ 같은 말을 안 쓰기야 하겠나. 일본도 마찬가지다. 영어권 국가 대부분은 ‘도미넌트(dominant·우세한)’를 종목 이름에 붙여 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