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대륙에서 첫 올림픽을 치르는 브라질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부정부패 스캔들에 휘말린 현직 대통령은 탄핵심판으로 직무 정지 상태다. 혼돈의 정치는 경기 침체를 초래했다. 지카 바이러스에 러시아의 도핑 스캔들까지 안팎의 악재가 줄줄이 터졌다. “선수촌 화장실 물이 안 내려간다” “운전사들이 연습장 위치를 모른다”… 올림픽 조직위의 준비 부족에 대한 불만이 폭주했다.
▷6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2016 여름올림픽 개막식은 반전이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절반에 불과한 저예산 개막식이라지만 브라질의 저력을 충분히 과시했다. ‘새로운 세상’이란 주제 아래 자국의 독특한 역사와 전통, 문화와 자연환경을 압축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파괴를 표현한 메시지도 신선했다.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적은 예산의 한계를 거뜬히 뛰어넘었다. 2년밖에 남지 않은 평창 겨울올림픽이 배울 대목이다.
▷첨단 특수효과는 없었으나 삼바에 재즈를 가미한 보사노바를 비롯해 노래와 춤을 사랑하는 현지인들의 감성과 정서는 개막식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달동네 파벨라를 무대 세트로 당당히 내세운 것도 신의 한 수였다. 어쩌면 감추고 싶은 약점일지 모르는 빈민촌을 대중문화의 산실이자 열정적 에너지의 분출구로 전 세계에 각인시킨 셈이다. 마지막 성화 주자의 등장은 단연 압권이었다.
▷펠레와 네이마르 같은 세계적 스타를 제치고 이름도 낯선 마라톤 동메달리스트 반데를레이 지 리마(47)가 최종 주자로 뽑혔다.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내내 선두를 달렸으나 결승점을 5km 앞두고 난입한 관중 탓에 금메달을 놓친 ‘비운의 마라토너’다. 우승의 꿈을 빼앗긴 뒤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린 그는 웃는 얼굴로 결승점을 통과했다. 훗날 동료들이 금메달을 만들어 선물하려 하자 그는 답했다. “난 내 동메달이 더 마음에 든다.”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 주입하는 사회와 ‘빛나는 3등’의 가치를 주목하는 사회, 그 선택의 차이가 다른 미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