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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역도 은메달 그치자… 살벌해진 최룡해

입력 | 2016-08-09 03:00:00

[올라! 2016 리우올림픽]남북
최룡해 동행에 경직된 北선수단




4년전 金… 이번엔 銀 북한 역도 영웅 엄윤철이 169kg 1차 실패 후 안타까워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그저 최룡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딱 한마디만 나누고 싶었습니다.”

피천득의 수필 ‘은전 한 닢’에 빗대자면 꼭 이런 심정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취재 중인 동아일보와 채널A 취재팀은 7일(현지 시간) 최 부위원장과 숨바꼭질을 벌였다.

최 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홍은정(27)이 여자 개인 종합 예선 경기를 치른 체조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홍은정의 경기를 잠시 지켜보던 최 부위원장은 곧 자취를 감췄다. 취재팀은 최 부위원장을 만나기 위해 북한 대표팀의 경기가 열리는 탁구장으로 향했다.

여자 단식 세 경기가 동시에 열린 탁구장 분위기는 콘서트장 같았다. 시끄러운 음악이 계속 흘렀고 점수가 나올 때마다 환호성도 터졌다. 삼성 휴대전화로 ‘셀카’를 찍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경기를 지켜보던 북한 응원단 8명도 분위기에 녹아든 것처럼 보였다. 취재팀이 “축하드린다”고 말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2라운드 경기에서 북한 대표 이명순(24)이 페트라 로바스(36·헝가리)를 꺾은 뒤 북한 응원단에 인사를 건네자 이들은 못 볼 걸 봤다는 듯 서둘러 경기장을 떠났다. 피천득의 수필에서처럼 “염려 마십시오. 해치지 않소”라고 이야기할 기회도 없었다.

취재팀은 브라질에 있는 북한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최 부위원장의 일정을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북한 ‘역도 영웅’ 엄윤철(25)이 출전하는 역도장으로 향했다.

해가 저물자 예상대로 최 부위원장 일행이 역도 경기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취재팀이 다가가 “엄윤철을 응원하러 오셨냐”고 묻자 최 부위원장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경기장을 가리켰다. 곧바로 경호원이 취재팀을 막아섰다.

남자 56kg급에 출전한 엄윤철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 이 체급에서 금메달을 땄던 엄윤철은 이날 인상 134kg, 용상 169kg, 합계 303kg을 들었다. 엄윤철은 용상 마지막 3차 시기에서 170kg(세계신기록)을 들어 올리며 합계 307kg을 기록한 룽칭취안(26·중국)에게 뒤져 은메달을 땄다.

카메라에 포착된 ‘최룡해의 분노’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 역도 56kg급 경기가 끝난 7일(현지 시간) 밤 역도 경기장 밖에서 최룡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실선 안)이 북한 역도 감독(왼쪽)을 혼내는 듯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리우데자네이루=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엄윤철의 경기가 끝나자 최 부위원장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한 역도 대표팀 관계자가 관중석에서 내려온 최 부위원장의 팔을 잡고 허리를 굽혔다. 최 부위원장은 역도 코칭스태프와 함께 취재진은 들어갈 수 없는 방으로 들어갔다. 20여 분 뒤 방문을 열고 나오는 북한 관계자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최 부위원장은 경기장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이들을 혼내는 듯한 장면을 연출했다.

윤석천 한국 역도 대표팀 감독은 “북한이 바깥에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역도에서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목표로 삼았다. 엄윤철이 금메달을 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최 부위원장은 출국 전 “리우에서 금메달 3개를 따오겠다”고 보고했다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분노를 샀다. 김 위원장은 당시 “적어도 5개는 따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믿었던 엄윤철의 부진으로 최 부위원장의 머릿속도 복잡해지게 됐다. 엄윤철도 이날 “금메달을 못 땄으니 영웅이 아니다”라며 아쉬워했다. 기자회견에서 엄윤철의 말을 통역한 외국인 자원봉사자는 취재팀에게 “최룡해가 북한의 부통령(vice president)이냐”고 물은 뒤 “북한에서는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강병규 채널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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