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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스포츠 지도자 한류

입력 | 2016-08-09 03:00:00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안겼을 때 온 나라가 흥분의 물결에 휩싸였다. 한 시인은 ‘젊은 운동선수에 지나지 않았던 양정모가 태극기를 몬트리올 하늘 높이 휘날린 순간 한국의 아들, 한국인의 벗, 모든 한국인의 가장 가까운 혈연이 됐다’고 썼다. 양정모의 금메달은 경제가 도약하던 시기에 한국인들의 자부심을 스포츠 무대에서도 알린 축포였다. 12년 뒤 한국은 올림픽 개최국이 됐다.

▷어려웠던 시절, 한국이 좋은 성적을 낸 종목은 ‘헝그리 스포츠’라고 불리던 격투기 분야가 많았다. 복싱, 레슬링, 유도 등 기술이나 장비 이상으로 투지가 중요한 종목들이다.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10개 종목 23명을 내보낸 베트남을 보면 그 시절의 우리가 떠오른다. 국민소득 2100달러(약 233만 원)인 베트남이 올해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 나라가 뒤집어졌다.

▷남자 사격 10m 공기권총에서 한국 선수 진종오를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건 호앙쑤언빈은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돼 군에 입대했던 선수였다. AK소총을 쏘다 숨은 재능이 드러나 국가대표로 발탁됐지만 연습장은 에어컨이 제대로 안 들어와 사우나처럼 푹푹 쪘다. 외국 선수들이 하루 300발씩 연습할 때 50발을 지급받고, 남는 시간은 빈총으로 자세훈련을 해야 했다. 그를 지도한 박충건 감독은 “사격 선수는 쏴야 한다”며 한국에 자주 전지훈련을 왔다. 호앙쑤언빈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삼겹살이다. 그가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박 감독 덕분에 현금 10만 달러(약 1억1080만 원), 베트남의 평범한 직장인이 50년을 벌어야 만질 수 있는 포상금을 받게 됐다.

▷박 감독을 비롯해 한국인 감독 18명이 이번 올림픽에서 16개국 7개 종목의 대표선수들을 지휘하고 있다. 정신력이 절실하면 정신력을, 기술이 필요하면 기술을 전수해 메달밭을 일구게 돕는다. ‘지도자 한류(韓流)’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인 감독들은 대표선수들 못지않게 한국의 명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공로자들이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