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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王 세번째 육성방송… 1945년 ‘항복 선언’이 최초

입력 | 2016-08-10 03:00:00

히로히토 ‘종전 조서’ 5분간 낭독… 日국민들, 처음으로 육성 접해
아키히토, 2011년 동일본대지진때… ‘고통 분담’ 대국민 담화 발표




5월 19일 연쇄 강진이 휩쓸고 간 일본 구마모토 현을 방문한 아키히토 일왕. 재난 현장에서 무릎을 꿇은 채 이재민을 위로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제공

일왕의 육성 방송은 흔치 않다. 라디오와 TV가 등장한 이후 지금까지 세 차례뿐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裕仁) 일왕의 ‘종전 조서(終戰 詔書)’ 낭독 라디오 방송이 처음이었다. 히로히토 일왕은 떨리는 목소리로 연합군의 무조건적 항복 통첩을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난해한 한자어를 뒤섞어 5분여간 낭독해 취지를 단숨에 이해한 사람이 드물었다고 한다. 일본 국민이 일왕의 목소리를 직접 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일본에서 ‘옥음(玉音)방송’으로 불리는 이 방송을 통해 ‘살아 있는 신’으로 여겨졌던 일왕은 평범한 인간으로 전락했다. 방송에서 일본 국민은 여전히 신민(臣民)으로 불렀다.

두 번째는 리히터 규모 9.0의 동일본대지진 발생 닷새 뒤인 2011년 3월 16일에 방송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대국민 담화다. 일왕이 TV를 통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사전 녹화된 5분 30초짜리 영상에서 아키히토 일왕은 전무후무한 자연재해 앞에서 고통 받는 국민의 아픔을 나눠 짊어질 것을 호소했다. 신민이란 용어는 국민으로 바뀌었다. 아키히토 일왕은 후쿠시마 원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국민적 우려를 대변했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일왕도 국민과 같이 고통 받고 함께 걱정하는 인간임을 드러낸 것이다.

세 번째가 8일 이뤄진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퇴임’ 호소 방송이다. 10분 분량으로 역대 최장 시간 방송연설에서 그는 일왕 역시 생로병사의 고뇌를 짊어진 인간임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도 늙고 병들어 안온한 은퇴 생활을 꿈꾸는 소박한 노인이라는 점을 밝히며 국민에게 다가선 것이다. “덴노(일왕)도 고령화 문제를 피해갈 수 없나 보다”라는 방송 댓글이 이를 대변한다. CNN에 따르면 일왕은 연평균 250회 접견과 75회의 국내외 순방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팔순을 넘긴 일왕은 더 이상 이를 감당할 수 없음을 읍소한 셈이다.

이번 방송의 진짜 위력은 인간적인 호소에 숨겨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평화헌법 개정을 지지하는 일본의 개헌 세력에게 일왕은 국가의 구심점으로서 신격화의 대상이다. 그런데 일왕이 전 국민이 지켜본 방송을 통해 생로병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약한 인간임을 대놓고 천명한 것이다. 이번 방송이 고단수의 정치 행위이자 일왕 육성 방송 3부작의 완결편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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