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휴가도 동생이 살고 있는 도쿄에서 보냈다. 한여름의 도쿄라면 더위뿐만 아니라 말도 못하게 높은 습도에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곤란하다. 지하철을 타고 있을 때나 우에노 공원 같은 데를 어슬렁거리다가 나도 모르게 행인들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각자의 방식대로 더위를 참고 이기고 있는 사람들을. 일단 손수건은 기본, 그 다음은 부채. 보통은 쥘부채들이다. 땀이 나면 손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고 손목을 약간씩만 움직여 열기로 달아오른 얼굴에 대고 부채를 부친다.
‘단오 선물은 부채, 동지 선물은 달력’이라는 속담도 있고 임금이 단옷날 신하들에게 부채를 선물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지만 부채는 이제 너무 흔해져버렸거나 대접받지 못하는 사물이 돼버린 감이 없지 않다. 교실에 선풍기 한 대만 간신히 털털거리며 돌아가던 때가 있었다. 체육 시간을 마치고 나면 책받침으로 부채질을 하거나 다 쓴 연습장을 한 장씩 찢어 같은 간격으로 앞뒤로 착착 접어 종이부채를 만들어 부치곤 했다. 그래서인가 나는 지금도 어디선가 홍보용으로 공짜 부채가 놓여 있으면 일단 하나는 챙기고 본다. 햇빛도 막고 얼굴도 가리고 모기도 쫓고.
최근에는 이런 부채를 봤다. 초등학생 조카들이 여름방학 전날 학교 앞에서 받아 온 것인데 활짝 웃는, 꼭 ‘철수와 영희’ 같은 소년 소녀의 얼굴이 앞뒤로 그려져 있고 이렇게 크게 쓰여 있다. ‘아이고 신나라.’
나에겐 아직도 여름의 필수품인 부채를 든 채 정현종의 시 제목 일부처럼 ‘태양이 떵떵거리’고 있던 인사동 길을 잠시 걸어 다니다 왔다.
조경란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