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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은 붕괴된 터널에 갇힌 평범한 일상의 위기를 담아낸다. 그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한순간 몰아닥치는 재난의 위험 그 자체다. 사진제공|비에이엔터테인먼트
주연: 하정우 배두나 오달수
감독: 김성훈
제작: 비에이엔터테인먼트
10일 개봉·12세 관람가·126분
자동차 회사의 영업사원이 퇴근길에 나선 뒤 통과하던 터널이 무너지면서 마주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그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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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 연기는 비현실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이다”
영화 ‘부산행’에 오른 사람들은 엇나간 욕망의 자본이 몰고 온 재난에 봉착한다. 영문도 모른 채. 그렇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공유)의 뒤늦은 인식과 후회는 그나마도 다행일까, 아닐까.
어쩌면 ‘터널’과 ‘부산행’의 차이는 그것인지 모르겠다. 영화와 현실 사이 간극. ‘부산행’은 현실에 바탕을 두지만 어차피 허구의 세계임을 다행으로 여기게 한다. 하지만 ‘터널’은 현실 속 기시감의 확연한 발현이다.
위 ‘또’의 따옴표는 그래서 엄중한 의미를 갖는다. 여전히 엇나간 욕망의 자본과 부실은 그렇게 현실을 끊임없이 무너뜨려왔기 때문이다. 그 어이없는 대형의 재난들을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던 잇단 비극의 현실, 그래서 극중 뉴스 앵커의 “대한민국의 안전이 또 다시 무너졌다”는 멘트는 차라리 ‘클리셰’(진부하거나 상투적이거나 전형적인 대사나 이야기)가 아닐까. ‘클리셰’의 반복이 그토록 가슴 아플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비극은 바로 여기에도 있었다. 영화는 그 아픈 현실을 그대로 담아냈고, 이야기는 허구가 아닐 수 있음을 말한다. 붕괴된 터널의 고립된 공간, 그 속에 갇힌 평범한 일상, 이를 ‘또’ 그저 지켜보며 발 구르다 쓰러질 수밖에 없는 무력함. 어디서 많이 보아온 듯, 느껴본 듯하지 않은가.
그 사이로 피식 자아내는 웃음의 절묘한 설정과 구성은 하정우의 연기에 빚진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비좁은 공간 안에서 그가 펼쳐내는 연기는 비현실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이다.
헌데, ‘터널’이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은다면 그것은 다행일까, 아닐까.
● “가슴이 막힌 느낌 내게 닥치지 않길 바랄뿐이다”
잊고 싶은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할 때가 있다. 잔혹한 그 현실 앞에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혹시 ‘내 일’이 될지 몰라 차마 외면하지도 못한다. ‘터널’이 그렇다. 딸 아이 생일에 케이크를 사들고 가던 퇴근길에서 터널이 무너져 한 달 넘도록 갇힐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영화는 부지불식간의 재난, 그 예고 없는 불운을 맞닥뜨린 한 가장(하정우)의 이야기이자, 한 치 앞을 모르고 살아가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하루 멀다하고 터지는 현실의 사건과 사고, 그보다 더 거대한 재난을 마주할 때면 처음엔 충격에 빠지고, 다음엔 안타까움에 휘말리지만 결국 ‘내 일’이 아니라는 데 안도하게 된다. 하지만 기교를 빼고 헛된 희망조차 주지 않는 영화 ‘터널’에서 그런 안도감을 얻기란 어렵다. 재난 희생자 가족이 끝까지 구조를 바라는 모습,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가족이 가해자로 취급되는 역전된 상황은 특정 사건을 떠올리게 해 섬뜩하다.
‘터널’은 재난이 그저 영화 속 상상, 뉴스로 접하는 소식이 아니라 언젠가 나에게도 닥칠지 모를 실재가 될 수 있다는 위협감마저 안긴다. 보고 나면 통쾌하기보다 가슴 한 쪽이 꽉 막힌 듯 답답하다. 비슷한 재난 소재의 ‘부산행’과 비교하면 확실히 ‘재미’는 덜하다.
오히려 답을 찾아야 숙제가 주어진다. 재난에 처한 나를 구해줄 사람은 누굴까. 터널에 갇힌 이가 내 남편이라면, 과연 뭘 해야 하나.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무력감을 마주한다면 어떻게 견뎌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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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