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 2016 리우올림픽]21세 박상영 펜싱 에페 깜짝 金
금빛 환호 펜싱 에페 박상영이 15번째 포인트를 따내며 금메달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10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올림픽파크 카리오카 경기장3에서 열린 펜싱 에페 남자 개인 결승전에서 박상영은 경기 후반까지 임레 게저(헝가리)에게 10-14로 밀렸지만 내리 5점을 따내 대역전승을 거뒀다. 리우데자네이루=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국제펜싱연맹(FIE) 남자 에페 세계 랭킹 21위 박상영은 10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 결승전에서 세계 랭킹 3위 임레 게저(42·헝가리)에게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0-14로 뒤져 1점만 더 허용하면 경기를 내줘야 하는 위기 상황에서 박상영은 믿기지 않는 5연속 득점에 성공하며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초로 올림픽 에페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마지막 포인트에 성공한 뒤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체육관이 떠나갈 듯이 환호성을 지른 박상영은 “원래 내 실력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가니까 경기가 잘 안 풀리더라. 욕심을 버리면 내 몸이 저절로 반응해줄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은 게 역전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최연소 기록이 116년 전인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의 라몬 폰스트(당시 16세·쿠바)라는 점을 감안하면 현대 올림픽에서는 최연소나 다름없다. 반면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에페 개인전에서 동메달을 땄던 임레는 이번까지 5차례나 올림픽에 출전했다. 박상영이 처음 나간 큰 무대에서 자신보다 인생을 두 배나 산 선수를 무너뜨린 것이다.
○ 펜싱밖에 모르는 바보
검은색 돼지 대여섯 마리가 집 안으로 뛰어들어 오는 태몽을 꿨다는 그의 어머니 최명선 씨(51)는 공부를 잘하던 돼지띠 아들이 펜싱을 하겠다고 하자 걱정부터 앞섰다고 한다. 때마침 집안 형편도 기울었다. 어머니가 계속 반대를 굽히지 않자 박상영은 오전 5시에 집을 나서 오후 11시에 들어가는 ‘반(半)가출’ 시위를 벌였다. 어머니는 혹시라도 아들이 잘못된 길로 들어설까 걱정했지만 그 시간 박상영은 거울을 마주 보며 스텝 훈련을 하고 2시간씩 강변을 뛰었다.
지도자들이 본 박상영은 역시 펜싱에 미친 아이였다. 국제펜싱연맹 홈페이지에도 박상영의 별명은 ‘크레이지 펜서(미친 검객)’라고 올라 있다.
대표팀 상비군 감독으로 박상영을 지도했던 김창곤 FIE 심판위원은 “혹독한 연습 후 중간 쉬는 시간에도 펜싱 동영상을 찾아보던 녀석”이라며 “펜싱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있으면 그걸 진짜 못 참았다. 하루 종일 펜싱만 생각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 몰입의 힘, ‘덕력(?)’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 대신 ‘덕력’을 믿는다.
박상영은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자기소개에 ‘올림픽=제일 재밌는 놀이’라고 썼다. 박상영은 처음 펜싱을 시작했을 때부터 이 재미있는 놀이터에서 제대로 놀기 위해 장기 계획을 마련했다.
박상영은 지난해 왼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펜싱 선수로는 크지 않은 체격 조건(178cm, 75kg) 때문에 순발력이 중요한 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부상이었다. 박상영은 “어느 날 국내대회에서 ‘쟤는 끝났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올림픽 출전이라는 꿈이 없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간절했는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꿈을 수도 없이 꿨다”고 말했다. 부상으로 힘들어하던 박상영에게 아버지 박정섭 씨(54)의 격려도 큰 힘이 됐다. 박 씨는 ‘이겨내고 또 이겨내면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강인한 영이로 태어날 것이라고 아빠는 믿는다’는 편지를 보내 아들의 기운을 북돋았다.
리우데자네이루=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