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親美-親中 택일 아닌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 북의 핵무장 방조한 중국의 대북정책 실패가 한반도에 사드 불러들였다 중국을 짝사랑한 한국인, 한중관계의 실체 똑바로 보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사드 배치가 군사적 효용성을 넘어 주변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띤 사안임은 분명하나 대한민국이 당면한 선택의 본질은 단순하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에 서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명백하고 실존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방책을 강구할 것이냐, 그런 노력은 아예 포기하고 5000만 국민의 생명과 안위를 오로지 북한 김정은의 자비에만 맡길 것이냐의 선택이다.
중국의 위세와 겁박에 맞서 자주독립국가로 남을 것이냐, 대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을 우리의 주권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고 중국의 사실상 속국으로 되돌아갈 것이냐의 선택이다. 밥벌이하는 데 지장이 있을까 봐 차라리 생명과 안전을 포기할 것이냐, 먹고사는 데 불편이 있더라도 생존부터 도모할 것이냐의 선택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을 두고 주변국에 폐 끼칠까를 먼저 걱정하며 우리끼리 논쟁을 벌이고 있을 만큼 상황이 녹록하고 한가한가?
그러나 이는 중국의 대북정책이 거둔 필연적 결과이고 자업자득이다. 사드를 불러들인 원흉은 북한의 핵무장이고, 북한 체제의 안정을 비핵화보다 중시한 중국의 대북정책이 비핵화 실패의 근본 원인이다. 중국이 김정은 체제 유지에 지장 없는 범위 내에서만 제재를 가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북한이 안심하고 핵무장을 강행하도록 방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막대한 대북 압박수단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이를 비핵화를 위해 사용하는 데 그토록 인색했던 중국이 핵 위협에 대한 우리의 자구책 강구를 시비할 자격이 있는가? 사드가 설사 중국의 핵심 이익에 배치된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아낼 방도를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건 우리 주권에 대한 용납지 못할 능멸이며 대국의 오만이다.
사드 배치를 계기로 중국이 우리에게 집요하게 접근해온 저의와 함께 중국에 대한 짝사랑의 거품 속에 가려졌던 한중 관계의 실체도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중국이 원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우리의 주권 포기를 전제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라면 이에 연연할 가치가 없고, 관계가 악화한다고 잃을 것도 없다. 북한 비핵화와 통일에 긴요한 중국의 협조를 더 이상 얻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걱정도 한중 간 상충되는 전략적 이해관계의 구조를 무시한 데서 나온 기우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드를 포기한다고 중국이 비핵화를 위해 북한 체제를 흔들 수준으로 대북 압박에 나설 리도 없고, 북한이 결사반대하는 통일을 위해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다.
사드 배치가 북한의 핵무장보다 중국의 전략적 이익에 더 큰 해악이 된다면 중국은 오히려 사드 철수를 위해 북한 체제의 안정을 해칠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비핵화에 열의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드 배치는 중국에 그 원인 행위를 해소하거나 사드를 현실로 받아들이는 선택밖에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당장은 대국답지 않은 치졸한 보복 조치까지 동원해가며 우리의 굴종을 강요하고 정부 결정을 번복하려고 시도하겠지만 얻을 것은 없다. 우리의 집단지성을 어지럽히는 모화(慕華) 사상의 유전자(DNA)와 망령을 몰아내야 대한민국이 바로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