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 감독의 최신작 ‘이레셔널 맨’의 한 장면. 철학 교수가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판사를 살해한다는 내용의 블랙코미디로 지성인들의 지적 우월감을 비꼬는 내용이다.
이승재 기자
앨런의 최신작 ‘이레셔널 맨(Irrational Man)’은 이성(理性)을 신봉해온 철학 교수가 지식의 무기력함을 깨달으며 비관주의에 빠지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한 판사를 살해함으로써 ‘지식이 아닌 살인을 통해 세상을 바꾸었다’는 새로운 성취감에 취해 비이성적으로 변해 가다 결국 자멸한다. 윤리학을 가르치는 철학 교수의 비윤리적 행위를 통해 지식인의 자기모순을 풍자하는 이 블랙코미디를 보노라면 앨런이 쓴, 철학 교수의 무지하게 현학적인 다음 대사는 그 자체로 지성인의 지적 우월감이 얼마나 기만적인지를 신랄하게 비꼬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칸트가 만들어낸 완벽한 도덕세계에선 거짓말이 불가능하지. 거짓말은 정언명령에 위배되기 때문이야. 그렇다면 안네 프랑크와 가족이 2층 다락방에 숨어 있는데, 잡으러 온 나치에게 ‘저기 2층에 숨어 있어요’라고 솔직하게 말해야 된다는 거지. 철학은 언어적 자위행위일 뿐이야.”(철학 교수)
먼저 3위. “제 영화 속에는 여러분이 좋아하는 드라마나 서사도 없고, 교훈이나 메시지도 없거나 불확실합니다. 제 능력과 기질은 하나밖에 못하는 겁니다. 정말로 (내가) 몰라서 (영화 만드는 작업에) 들어가야 하고, 그 과정이 정말로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제가 컨트롤하는 게 아니라 그 과정이 나로 하여금 계속 뭔가를 발견하도록 하고, 저는 그냥 그걸 하나의 덩어리로 만드는 것뿐입니다.”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왜 난해한 영화를 계속 만드느냐”는 영화학도의 질문에 대한 영화감독의 대답. 기실은 홍상수 자신의 답변이나 다름없다. ‘과정’ ‘발견’ ‘덩어리’와 더불어 ‘조각’과 같은 단어들은 홍상수가 대사에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인데, 모호해서 더욱 있어 보인다.
개념화된 단어를 사용해 상대를 카오스에 빠뜨리며 설득에 성공하는 이런 기술은 다른 여자가 생겨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할 계획인 남편들이 참고할 만하다. 이렇게. “여보. 결혼생활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이 정말로 발견하는 과정이어야 해. 그래야 난 그 과정에서 의미라는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 결혼생활은 이제 어떤 과정도 발견할 수가 없어. 고통스러워. 죽고 싶을 만큼. 그러니까 이혼해.” 어떤가. 매우 형이상학적인 이혼 통보가 아닌가 말이다.
2위는 ‘옥희의 영화’에서 “선생님, 성욕은 어떻게 이겨 내세요?”라는 질문에 대한 영화감독의 답변이다. “누가 이겨낸다고 그랬어? 누가 성욕한테 이기냐? 너 그런 사람 본 적 있어? 그런 사람 있다고 얘기나 들어본 적 있어? 안 돼! 그러니까 고민하지 마!”
마지막 1위는 ‘생활의 발견’에 나오는 주인공의 대사다. “우리, 사람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 마음에 솔직하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도 소중한 일인가. 하지만 비록 패배할지라도 괴물 같은 나의 본능과 욕망에 끝까지 저항하는 것도 지식인의 사명이 아닐까. 우리, 사람은 못 되어도 괴물은 되지 말자고요.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