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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땜질처방’ 내민 정부… 전문가들 “저유가인 지금 개편 적기”

입력 | 2016-08-11 03:00:00

[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올 여름만 완화]




정부 여당이 10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올여름 동안 한시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한 것은 ‘전기요금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서다. 전날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에어컨을 4시간만 쓰면 요금 폭탄이 없다”고 발표한 후 여론은 들끓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부자 감세라도 좋으니 누진제를 폐지하라” “내년 대선에서 심판하겠다” 등의 원색적인 비판이 쏟아지자 정부는 누진제의 근간은 건드리지 않은 채 또다시 임시방편 카드를 꺼내 들었다.


○ 하루 종일 들끓은 민심

산업부는 이날 오전부터 여론 동향 파악에 여념이 없었다. 정부의 해명으로 성난 민심이 가라앉길 기대했지만 오히려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서다. 두 살짜리 자녀를 키우는 주부 강모 씨(33)는 “더위는 24시간인데 에어컨은 4시간만 켜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어린아이나 노약자가 있는 가정은 하루 종일 냉방을 해야 하는데, 이런 가정은 요금 폭탄을 맞아도 괜찮다는 얘기냐”고 비난했다. 또 다른 주부 변모 씨(55)는 “공무원들이 시원한 사무실에 앉아 일하다 보니 하루 종일 실내온도가 30도를 웃도는 집 안에서 살림을 해야 하는 서민들의 고충을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날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한 ‘전기요금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 신청자는 1만 명을 돌파했다.

하루 사이에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되자 정부 안에선 “자칫 누진제 논란이 ‘제2의 연말정산 파동’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실제 전기요금 누진제 논란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은 지난해 연말정산과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세금 폭탄’ 우려에 정부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대응하다 여론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정부의 안이한 대응에 정권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제도 개선을 지시하는 일이 벌어졌다.

올해도 분노한 민심이 정부 여당으로 향하자 새누리당은 10일 산업부에 대응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만간 당정 협의를 열어 여름에 한해 누진제 적용을 완화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인 새누리당 조경태 의원은 현행 최고 11.7배에 달하는 누진배율을 1.4배로 완화하고, 현행 6단계의 누진제 단계를 3단계로 축소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히는 등 여권의 움직임은 하루 종일 분주했다.


○ 정부 “누진제 완전 개편은 불가”

정부가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꿨지만 이번 대책은 ‘땜질 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누진제 개편은 검토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누진제를 전면 폐지하거나 완화할 경우 고소득층의 부담은 줄고 저소득층 부담은 느는 ‘역진성’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전력 수요가 크게 늘어 ‘블랙아웃’(전기가 부족해 갑자기 전력 시스템이 멈추는 것)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하지만 최근 한국전력의 영업실적을 감안하면 영업이익의 일부는 전기요금 인하로 돌릴 여지가 충분하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실제 한전은 올 상반기(1∼6월) 자회사 영업이익을 포함한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6조3098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0.6%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무려 45.8% 급증한 것이다. 한전의 영업이익률은 20.4%로 거래소 상장기업 평균 이익률(5%)의 4배를 넘어섰다. 한전은 지난해 11조3467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이런 추세라면 불과 1년 만에 이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지금 누진제를 일부 개선하더라도 당장 전력 수급에 위기가 생기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력 공급에 여유가 있는 데다 저유가로 전기 도매가격이 싸졌기 때문이다. 실제 올 6월 전기 도매가격은 kWh당 65.31원으로 7년 만에 최저치였다. 반면 도매가격이 낮아져도 소비자들에게 받는 소매가격은 그대로다. 전기를 팔면 팔수록 한전의 영업이익은 늘어나는 구조인 셈이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유가 기조가 이어지고 있는 지금이 누진제 개편의 적기”라고 지적했다.

시민들은 정부의 일시적인 누진제 완화를 반기면서도 매년 여름 반복되는 ‘전기요금 폭탄’ 논란을 해결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직장인 김주영 씨(35)는 “가정용 전기는 누진제가 없더라도 내가 직접 요금을 내기 때문에 알아서 아껴 쓴다”며 “가정용보다 더 전기를 많이 쓰는 일반용, 산업용 전기부터 절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신민기 minki@donga.com / 손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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