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창조과학계는 미국 그랜드캐니언이 성경 속 노아 홍수의 결과로 형성됐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DB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애리조나 주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사우스 림). 광활한 대협곡이 눈앞에 펼쳐진 가운데 이재만 미국 창조과학선교회 선교사가 전망대 위에 화이트보드를 세워 놓고 창조과학 강연을 시작했다. 청중은 한국에서 온 일간지와 개신교계 언론사 기자들. 지질학을 전공한 이 선교사는 시종일관 “그랜드캐니언은 노아 홍수로 발생한 저탁류(底濁流·지진 등으로 인해 빠른 속도로 흐르는 퇴적물)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논리는 크게 두 단계로 나뉜다. 우선 대홍수로 전 지구가 물에 잠겼으며, 이후 융기된 콜로라도 고원에 거대한 호수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엄청난 수량(水量)을 이기지 못하고 호수의 둑이 터지면서 생긴 강력한 저탁류가 대협곡(그랜드캐니언)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이는 주류 지질학계의 학설과 다른 얘기다. 지질학계는 협곡의 생성 원인을 저탁류가 아닌 콜로라도 강에 의한 오랜 침식 작용으로 설명한다. 지금으로부터 7000만 년 전 해안 지층이 융기해 콜로라도 고원이 형성된 이후 로키 산맥에서 발원한 콜로라도 강이 오랜 세월 거대한 퇴적지층을 깎아 협곡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때 각 지층을 구성하는 암석들의 침식 정도가 모두 달라 마치 계단식의 협곡이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진화론을 지구와 생명의 기원을 밝히는 절대 원칙으로 삼는 것은 문제라는 점은 개신교와 창조과학계의 공통된 주장이다. 예컨대 사람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이 있었다는 진화론을 뒷받침할 만한 중간단계(연결고리)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현장에서는 창조과학의 새로운 해석에 적지 않은 흥미를 보이는 동시에 “성경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은 위험할 수 있다”는 반응이 많았다. 구약성경 창세기의 모든 문장을 과학적인 사실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자의로 팩트를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창조과학계 내부에서도 지구의 나이가 젊은지, 오래됐는지(젊은 지구론 vs 오래된 지구론) 혹은 노아 홍수와 같은 대격변이 한 번이었는지, 여러 번이었는지(단일격변론 vs 다중격변론) 등을 놓고 극명한 의견 대립이 있다. 그만큼 성경 내용에 대한 해석이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애리조나=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