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강-바다-농산물까지 시름
35도가 넘는 폭염이 지속된 8일 오전. 환경부 산하 한강물환경연구소 연구진은 한강 상류 팔당호를 찾아 수질을 검사했다. 눈으로는 서울 시민의 식수원인 이곳 수질에 이상이 없어 보였지만 물을 채취해 정밀 분석해 보니 독성을 가진 ‘유해 남조류’가 발견됐다. 유해 남조류는 식물 플랑크톤의 일종으로 독성물질(마이크로시스틴)을 갖고 있다.
찜통더위가 계속되면서 국내 강과 호수에 유해 남조류로 인한 ‘녹조(綠潮)’ 현상이 확산 중이다. 바닷물 온도 상승으로 비브리오균 주의보도 내려졌고 병해충도 느는 등 자연도 몸살을 앓고 있다.
○ 전국에 녹조 확대 우려, 바다는 비브리오균 주의보
11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환경부와 함께 전국 24개 강, 호수의 수질을 분석해 보니 팔당호에서는 mL당 431개의 유해 남조류가 발견됐다. 이달 초만 해도 팔당호에는 유해 남조류가 없었다. mL당 남조류 세포수가 1000개를 넘으면 조류경보가 발령된다.
다른 지역은 더 심각하다. 11일 현재 충청권 식수원인 대청호 내 3개 지점과 낙동강 내 2개 지점에 조류경보가 발령됐다. 대청호의 남조류 세포수는 mL당 8598개, 낙동강은 7906개나 된다.
수돗물 관리에도 비상이 걸렸다. 독성이 있는 남조류가 정수장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을 경우 식수를 마신 사람은 간 질환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 각 지방자치단체, 한국수자원공사는 수돗물 정수장의 수질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수자원공사 경남본부 문필중 수질관리팀장은 “취수장에 남조류 유입 방지막을 설치하는 한편 물에 오존을 넣어 독성물질을 산화시키는 방법으로 남조류를 제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한국영 상수도본부장은 “고도 정수시설을 강화해 남조류의 독성을 완벽히 걸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바다 역시 신음하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8월 중하순 동해, 서해의 수온은 평년보다 2도가량 높아질 것으로 예측됐다. 수심이 얕은 곳의 수온은 30도 이상에 달해 평년보다 최대 6도 이상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바닷속에 비브리오균이 증식할 최적의 환경이다. 비브리오균에 오염된 해산물을 먹으면 패혈증이 발생한다. 2011∼2015년 비브리오패혈증 환자 269명 중 147명이 사망했다. 또 수온 상승으로 바닷물 염분 농도가 낮아져 양식 물고기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등 어민들의 피해도 우려된다.
농산물 가격도 들썩였다. 11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8일 기준 배추 한 포기 가격은 한 달 전보다 1000원 넘게 올라 3957원으로 뛰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고랭지 배추 출하량이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평년 기준으로 고랭지 배추 생산량은 18만7000t 수준인데 재배 면적과 작황이 나빠서 올해는 평년보다 2만7000t가량 덜 출하됐다. 마늘 역시 폭염으로 생산량이 15%가량 줄어 kg당 1만269원(8일 깐마늘 기준)으로 평년(약 7500원)보다 크게 올랐다.
폭염은 과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긴 열대야가 문제였다. 과일이 강한 햇볕에 오래 노출돼 화상을 입는 일소 현상이 나타나고 밤에는 호흡 활동이 활성화되면서 당분 등을 에너지로 소비하고 있는 것. 이로 인해 당도가 떨어지고 색깔이 나빠져 국내 대표적 사과 산지인 충북 충주를 비롯한 과수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병해충 피해도 늘고 있다. 아열대성 해충인 꽃매미와 미국선녀벌레는 폭염을 틈타 창궐하고 있다. 경기 지역의 피해가 특히 심각하다. 미국선녀벌레는 지난달 18일 발생 면적이 826ha로 지난해 같은 기간 45ha의 18.4배에 달해 도 차원에서 긴급방제 작업에 들어갔다. 기상청에 따르면 온난화로 2070년에는 국내 폭염 일수도 현재보다 30일가량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기재 부산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폭염 등으로 인한 한반도 기후변화가 큰 폭으로 이뤄지는 만큼 생태계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장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윤종 zozo@donga.com·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