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용 전기료 누진제 한시적 완화]
손영일·경제부
1970년대 만들어진, 낡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뒤에 숨어 국민의 ‘무지’를 탓하더니 불과 하루 만에 태도를 180도 바꿨다. 지난 2주간 일반 국민들은 에어컨을 맘 놓고 틀지 못하며 팔열지옥(八熱地獄·뜨거운 열로 고통을 받는 여덟 지옥을 말하는 불교 용어) 같은 폭염을 견뎌 내야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누진제로 인한 전기요금 폭탄 우려나 산업용 전기와의 형평성 논란에 대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정치권이 목소리를 높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자 올 7∼9월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하고 중장기적으로 누진제를 개편하기로 했다.
이런 정부의 태도는 여론의 분노만 샀다. 보다 못한 박 대통령이 개선을 지시했고, 정부는 바로 태도를 바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대책으로 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근로소득자 절반을 면세자로 만드는 졸속 개정이었기 때문이다. 여론 설득이나 공론화 과정 없이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데 급급해 만든 게 원인이었다.
현재 전기요금 누진제와 관련해 똑같은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하루 만에 태도가 돌변했고, 연말정산 파동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린다. 이를 막기 위해선 정확한 팩트(fact) 공유와 대국민 소통이 필수다. 정부는 현행 전기요금 체제에서 수혜자는 누구인지, 현실적으로 어느 수준까지 누진제를 개편할 수 있는지, 누진제 개편으로 인한 소외계층의 부담은 얼마나 될지 등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또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누진제 개편을 논의하기로 한 만큼 긴 호흡을 갖되 포퓰리즘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비합리적인 부분이 발견된다면 그것만 ‘정밀타격(surgical strike)’해 개선하면 된다. 대통령이 얘기하니까, 여론이 나쁘니까, 급한 불부터 끄자는 수준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땜질 처방이 아닌 제대로 된 해법을 보고 싶다.
세종=손영일 경제부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