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사례 늘자 안전장치 강화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모 씨(57·여)는 요즘 매일 경기지역의 한 지역주택조합 홍보대행사에 ‘출근’ 중이다.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출근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그는 시세보다 20% 싸다고 홍보하는 한 지역주택조합 아파트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계약금과 1차 중도금 등 2500만 원을 냈다. 하지만 얼마 뒤 다주택자인 자신은 조합원 자격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김 씨의 탈퇴 요청에도 대행사는 차일피일 환불을 미루고 있다. 김 씨는 “환불 조항이 따로 없어서 계속 항의만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허위·과장 광고에 1000만 원 이하 과태료 일반 분양아파트보다 싼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는 지역주택조합이 급증하면서 김 씨와 같은 피해자도 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역주택조합의 회계감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주택법 개정안을 마련해 12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은 설립인가 후 3개월이 지나면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정부는 또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회계감사를 총 2회에서 3회로 늘리고 허위·과장 광고로 조합 가입을 알선할 경우 1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국회에서는 이날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현아 새누리당 의원이 지역주택조합사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주택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발의안은 주택조합이 조합원을 모집할 때 사전에 관할 시군구청장에게 신고한 후 공개모집을 하도록 해 허위·과장 광고의 피해를 막도록 했다. 또 조합을 탈퇴하는 사람이 공동부담금과 위약금을 뺀 납입금 잔액을 환불받을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하고, 무자격자가 조합에 가입한 경우 환급을 요청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환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 “강화된 규정 부작용도 고려를” ‘아파트 공동구매’로 불리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은 건설사들이 토지를 확보한 뒤 분양하는 일반아파트보다 분양가가 10∼20% 저렴하다. 입주자들로 구성된 조합이 직접 시행을 맡기 때문에 각종 부대비용을 줄일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최근 분양시장 호황과 함께 지역주택조합사업도 크게 늘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10년 설립인가를 받은 지역주택조합은 7개(369채)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06개(6만7239채)로 급증했다.
인기에 비례해 지역주택조합에 주의할 점도 많다. 시장에서 검증되지 않은 주체가 사업을 추진하다 중단되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이 피해를 보는 사례가 적잖다. 또 조합원 모집과 토지 매입기간이 지연되면 금융비용 부담이 늘어 조합원들이 추가 분담금을 내는 일도 왕왕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조합원 모집이나 토지 매입이 늦어지면 사업이 기약 없이 지체될 수 있다”며 “일부 대행사는 조합원 수를 늘리려고 허위·과장 광고 등 편법을 동원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한편 주택업계에선 정부와 국회의 개선책이 지역주택조합 문제를 일부 해결해 줄 것이란 기대와 함께 발목을 잡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내놓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조합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불투명한 정보 부분을 개선한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자칫 강화된 규정이 시장의 자율성을 깨뜨리고 지역주택조합의 추동력을 잃게 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