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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 두 달간 꼬박 일했는데… 현장실습비는 ‘0’원

입력 | 2016-08-13 03:00:00

[토요판 커버스토리]금턴 vs 흙턴, 인턴도 양극화




“물 떠 오기, 커피 타 오기, 이런 건 기본이죠. 고객 항의가 들어오면, 많은 ‘장(팀장, 부장 등)’들을 대신해서 제가 응대도 했어요. 매번 욕만 실컷 먹었죠. 제가 한 일도 아닌데….”

대학생 김모 씨(23)는 올 3∼6월 한 대형 컨벤션 업체에서 현장 실습을 했다. 하지만 현장 실습은 ‘땀방울의 가치를 미리 느낀다’는 취지와 거리가 멀었다. 김 씨는 이 업체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블로그를 관리했다. 행사 관련 전화를 돌리기도 했다. 물론 ‘실제 회사 업무를 체험해 볼 수 있었다’는 장점은 있었다. 하지만 업무량에 비해 받은 돈이 너무 적었다. 김 씨가 받은 돈은 월 90만 원(학교에서 50만 원, 회사 40만 원). 최저임금(월 환산액 기준 126만270원)에도 미치질 못했다.

주로 대학과 기업이 연계해 실시하는 현장 실습제는 연간 15만 명의 대학생이 참가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기업이 자체적으로 채용하는 인턴이 자기 계발이나 취업을 위한 ‘선택’이라면, 현장 실습은 대학의 실적 또는 졸업 학점을 위해 꼭 다녀와야 하는 ‘의무적 인턴제’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현장 실습생들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이를 보완하겠다며 올해 초 새로운 규정을 내놨지만 오히려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열정 페이’ 시달리는 현장 실습


그동안 현장 실습제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건 ‘열정 페이’로 불리는 수준 이하의 실습비였다.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에 따르면 지난해 현장 실습 과정을 이수한 대학생 중 실습 지원비를 받은 사람은 23.8%(3만7571명)에 불과하다.

올해 고용노동부와 교육부는 각각 ‘일 경험 수련생 가이드라인’(2월) ‘대학생 현장 실습 운영 규정’(3월)을 만들어 배포했다. ‘실질적 근로’를 제공할 경우 최저임금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이후 논란은 가라앉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현장에 있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황모 씨(21)는 7월 한 중견 기업으로 실습을 나갔다. 업무용 파일에 라벨 스티커를 붙이는 등 단순 작업을 자주 했다. 디자인을 전공했다는 이유로 ‘사내 광고물 디자인 작업을 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정부 규정대로라면 황 씨는 사실상 근로를 제공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적용받아야 한다. 하지만 회사는 황 씨에게 정확한 커리큘럼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약 50만 원의 실습비만 줬다. 황 씨는 “보수적인 회사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20만 원을 들여 옷, 신발, 가방을 새로 장만했다”며 “학점 3점 딴 것 빼고는 오히려 손해”라고 말했다.

최근 두 달간 현장 실습을 한 한모 씨(22)는 회사에서 인력 관리 담당 업무를 배우며 보조 업무를 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실습지원비는 ‘0원’. 학교에서 주는 월 50만 원의 지원금도 ‘일괄 처리’를 이유로 지급이 연기됐다. 한 씨는 “첫 달 월급을 받아야 그 돈으로 실습을 다닐 수 있는데 그럴 수가 없어서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고 말했다.



“학교요? 현장에 관심 없어요”


교육부 규정에 따르면 실습기관(업체)의 종류와 규모, 내용 등을 고려해 실습비 지급 수준을 협의해야 하는 주체는 각 대학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학교가 현장 실습 연결 실적에만 급급해 제대로 된 관리를 해 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출판사에서 실습을 했던 고모 씨(22)는 우편물과 택배 접수 같은 허드렛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실습비는 월 80만 원. 고 씨는 “하루 8시간씩 꼬박꼬박 근무했는데 학교에서는 ‘너희는 실습생이고 학생이지, 노동자가 아니다’라고만 했다”며 “최저임금 지급이 어렵다는 걸 정당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 지방 국립대 건축학과 학생들 사이에서는 “건설사 현장 실습에서는 비가 올 때 계단을 오르내리며 현장의 창문을 닫는 일밖에 배울 게 없다”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왔다. 학생 권모 씨(28)는 “링크(LINC·산학협력 선도 대학) 사업단에서 말하던 교육과정은 현장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담당 교수가 현장에 찾아오거나 현황을 점검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대학, 기업 모두 불만


올여름에는 현장 실습생 모집 공고를 내지 않는 업체가 갑자기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 서울의 스탠포드호텔 등 그동안 꾸준히 공고를 내던 업체들도 이번에는 공고를 내지 않았다. 최저임금 지급의 기준이 되는 ‘실질적 근로’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일어난 혼란이다.

수도권 대학의 한 호텔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에는 업체 15∼20곳에서 모집 공고가 왔는데 올여름 실습 때는 2, 3곳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방의 호텔에서 일하는 인사 담당자는 “지역 대학과 잘 협력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많은 인사 담당자는 ‘괜히 나섰다가 피 보기 싫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올여름 학생들은 ‘열정 페이’뿐만 아니라 ‘인턴 취업난’이라는 이중고(二重苦)를 겪게 된 셈이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가 ‘주요 질의 답변 자료’를 6월 초 내놨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근로 제공 기준과 제공량을 현장에서 누가 어떻게 판단할지 명확하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부 관계자는 “8월까지 현장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 대응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현장 실습 제도가 실적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산학협력학회장을 지낸 한양대 김우승 교수는 “대학은 학생들을 업체로 떠넘기듯 내몰고, 업체들은 이렇게 떠안은 학생들을 방치하고 ‘열정 페이’를 주는 소모적 구조”라며 “기업과 학생에게 모두 유익한 ‘지속 가능한 제도’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구특교 인턴기자 서강대 중국문화학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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