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깡통 차며 꿈 키우던 꼬마들 ‘금빛 트라이’

입력 | 2016-08-13 03:00:00

[리우 올림픽]피지, 92년만에 부활한 럭비 우승
교도관-벨보이 등 부업 뛰는 선수들… 英 꺾고 조국에 올림픽 첫 메달 선물




‘축구의 나라’ 관중들은 한목소리로 “올레”를 외쳤다. 이에 맞춰 ‘럭비의 나라’ 선수들은 연이은 득점으로 호응했다. 럭비 경기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브라질 출신 마테우스 씨는 “브라질 사람들이 리우 올림픽에서 축구 대표팀에 기대했던 걸 피지 럭비 대표팀이 보여주고 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피지 대표팀 할렘 글로브트로터스 감독이 ‘우리는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려고 플레이한다(We play to entertain)’고 말한 그대로였다.

피지가 92년 만에 부활한 올림픽 럭비 챔피언 자리를 차지했다.

피지는 11일(현지 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럭비(7인제) 남자 결승에서 영국을 43-7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피지가 올림픽에서 딴 첫 메달이다. 피지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데 성공한 149번째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이 됐다.

인구가 90만 명이 못 되는 태평양의 작은 섬 나라 피지에서는 럭비가 국기(國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인기가 높다. 리우 올림픽에 참가하는 대표 선수 명단을 프랭크 바이니마라마 피지 총리가 직접 발표했을 정도다. 당연히 실력도 뛰어나다. 피지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87위밖에 되지 않지만 럭비 세계 랭킹은 10위다.

피지 럭비 대표팀 주장 오세아 콜리니사우는 “우리나라는 아직 가난하기 때문에 차비를 아끼려고 형제들이 번갈아 가면서 학교에 가는 일이 흔하다”며 “학교에 가지 않는 아이들은 깡통이나 둘둘 만 티셔츠 아니면 슬리퍼까지, 공으로 삼을 만한 건 무엇이든 들고 럭비를 하며 논다”고 말했다.

럭비 선수들의 사정은 넉넉하지 않다. 선수 대부분이 부업으로 생계를 충당한다. 이번 대표 선수 13명 중에도 교도관이 한 명, 호텔 벨보이가 두 명 포함됐다. 콜리니사우는 “우리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다. 그래도 국민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행”이라고 말했다. 피지는 2월 불어닥친 태풍 ‘윈스턴’으로 44명이 목숨을 잃었다. 재산 피해 규모도 4억5000만 달러(약 5000억 원)나 됐다. 이 태풍으로 집이 무너진 대표 선수도 있다.

콜리니사우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민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며 “대표팀에 많은 지원을 하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는 그럴 여건이 안 된다. 그래도 작은 나라지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걸 세상에 알린 것 같아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결승전을 찾은 영국인 애덤 스코필드 씨는 “나는 영국 사람이지만 이번 경기는 피지를 응원했다. 피지가 가장 진화한 플레이를 선보이는 럭비 팀이기 때문”이라며 “피지는 빠르고 경쾌하다. 경기 내내 멈추는 법이 없다. 반면 영국은 너무 보수적인 전략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대패를 당하고 만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브라질에서도 점점 ‘후그비’(럭비의 포르투갈어 발음)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 2010년 1만 명이던 럭비 등록 선수가 지난해 6만 명까지 늘었다.
 
리우데자네이루=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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