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심규선 칼럼]이대 농성에 동의할 수 없다

입력 | 2016-08-15 03:00:00

평생교육 단과대 반대 농성은 총장의 중단 표명으로 끝냈어야
경찰 진입 빌미 ‘감금’은 부인하며 총장 사퇴하라는 건 지나치다
대학 담 낮추고 책무성 높이는 게 요즘 대학의 세계적 추세
이대생은 거꾸로 기득권 매달린다는 적지 않은 비판 무겁게 받아들여야




심규선 대기자

평생교육 단과대학(평단) 설치를 둘러싼 이화여대 농성 사태에 대해서는 거시적 평가가 많다. 대학 개혁을 위해서는 구성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줬다, 국내 대학이 처한 위기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새로운 운동 방식을 제시했다 등등이다. 맞다. 그런데 그건 학생들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농성으로 얻은 결과다. 나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학생들의 주장은 옳은가. 학생들의 주장에 비판적인 사람도 의외로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우선 학위 장사라는 주장. 정부에서 돈 받는 게 문제라면 정부 수립 이후 가장 많은 돈을 내걸고 대학구조 개혁하라는 타율자극형, 경쟁유도형 프라임사업은 괜찮은가. 프라임사업으로 인문계가 위축되니 인문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병 주고 약 주기 식의 코어사업은 또 어떤가. 이대는 두 사업 모두 따냈다. 최경희 총장이 각종 수익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단언하건대 최 총장이 소통만 잘하고 이들 사업에서 모두 탈락했다면 무능하니 물러나라고 했을 게 틀림없다.

수능을 안 보고 쉽게 입학하는 게 불만인가. 명문 이대생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문제로, 이번 사태의 본질일 것이다. 학생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미 대학입시는 수능 성적 위주의 정시 모집보다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논술, 실기 중심의 수시 모집으로 대세가 바뀌었다. 2017학년도 4년제 대학 모집 정원 35만5000명 중 정시 대 수시 비율은 3 대 7이다. 또 많은 대학이 고른기회전형이라고 해서 이미 저소득층 학생이나 보훈대상자, 장애학생, 다문화자녀 등을 일반학생과는 다른 기준으로 선발해 오고 있다. 이대도 2017학년도에 고른기회전형으로 30명, 사회기여자전형으로 15명을 선발한다. 전문대에서 가르쳐도 될 것을 왜 4년제 대학에서 가르치냐는 주장은 대학의 오만이고, 평단 과정에 왜 꼭 학위를 주어야 하느냐는 반문은 조금 앞선 자의 오만이다. 결국 평단 논쟁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대학의 철학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미국 하버드대 익스텐션스쿨과 시카고대 그레이엄스쿨, 영국 옥스퍼드대 해리스맨체스터 칼리지와 워릭대 평생학습센터, 일본 국립대 법인 시즈오카대 등은 성인에게 다양한 학위과정을 제공하는 대학으로 벤치마킹의 대상이다. 반대하는 재학생은 없다. 미국에서 시작한 온라인 대중공개강좌 무크(MOOC)는 인터넷을 통해 질 좋은 대학 강의를 무료나 싼값에 제공하려는 움직임으로, 전 세계로 확산 중이다. 한국도 지난해 10개 명문대가 한국형 무크(K-MOOC)를 만들었고, 이대도 참여하고 있다. 모두가 대학의 담을 낮추고 책무성을 높이려는 시도다.

한국의 입시제도는 건물 중앙에 사다리를 걸쳐 놓은 형태다. 옥상까지 올라가려면 바닥부터, 제때에, 순서대로 올라가야 한다.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때를 놓치면 그걸로 끝이다. 평단사업은 건물 옆에 나선형 계단을 만들려는 시도다. 자기가 있는 층에서, 언제든지,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숨통을 틔우자는 것이다. 그걸 반대할 명분은 없다. 대학은 이미 기득권 해체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대생들의 행동은 그 반대이니 위화감이 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장의 소통 노력이 부족했다는 주장은 이대 구성원들이 평가할 문제이므로 총장이 평단을 철회한 것까지도 이해한다. 그런데 사퇴 요구는 지나치다. 경찰 1600명을 불러들여 학생 200명을 합법적으로 진압한 것을 과잉 진압이라고 하면서, 그 원인을 제공한 학생 200명이 교직원 5명을 46시간 불법 감금한 것에 대해서는 왜 그리도 변명이 많은가. 총장 사퇴 요구라는 중대한 노선 변경을 하면서 다른 학생이나 교수, 교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한 흔적도 없다. 자신들이 비판하는 최 총장의 불통과 무엇이 다른가.

나는 평단사업만은 대학의 책무성과 공공성을 더 많이 실천해야 할 국립대나 국립대 법인에 몰아줬으면 한다. 서울대가 먼저 모범을 보였으면 좋겠다.

이화여대 창립일은 130년 전인 1886년 5월 31일이다. 그날 밤 메리 스크랜턴 여사의 집으로 한 여자가 찾아온다. 그토록 기다리던 첫 학생이었다. 그녀는 고급 관리의 소실이었다. 다음 학생은 가난한 집 소녀 ‘꽃님이’였고, 그 다음 학생은 전염병으로 집안에서 쫓겨나 죽어가는 한 아낙네의 굶주린 딸 ‘별단이’였다. 그러나 학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스크랜턴 여사가 미국에서의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이역만리 조선에 와서 여성 교육에 생을 바치고자 결심했다는 사실이다. 이대생들이 나선형 계단에 올라갈 학생으로 누굴 어떻게 뽑느냐를 문제 삼은 것 같지만, 실상은 스크랜턴 여사의 초심을 잃고 아무도 뽑고 싶지 않다는 속내를 비친 게 안타깝다.
 
심규선 대기자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