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2016 리우올림픽]‘핸드볼 왕언니’ 마흔넷 오영란이 후배들에게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의 마지막 영웅 오영란(44·인천시청)이 마지막 올림픽 무대를 떠났다. 기대했던 성적을 거두지 못한 오영란은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오영란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나기 전 후배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편지 형식으로 정리했다. 》
첫 출전 애틀랜타 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골키퍼로 출전했던 오영란(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는 자신의 다섯 번째 올림픽인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동아일보DB
“언니, 홀가분하게 올림픽을 마치고 싶었는데 허탈해요”, “이렇게 돌아가려고 해병대 지옥훈련까지 버텨낸 것이 아닌데…”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너희들의 축 처진 어깨를 영영 잊지 못할 것 같아.
다섯 번째 올림픽을 겪은 내게도 리우 올림픽은 아픔이 가득한 대회로 남게 됐어. 스물 한 살에 첫 태극마크를 단 이후 올림픽에서 이렇게 빨리 짐을 싸게 된 것도 처음이니까.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가슴에 품고 리우 땅을 밟았는데…. 리우를 떠나는 지금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32년 만에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구나.
첫 출전 애틀랜타 올림픽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 골키퍼로 출전했던 오영란(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는 자신의 다섯 번째 올림픽인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성적으로 마무리했다. 동아일보DB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 속에 은메달을 딴 이후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주인공이 됐지.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서는 꼭 동생들을 ‘우생순 시즌2’의 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는데…. 가장 미안했던 때는 러시아, 스웨덴과의 조별리그 1, 2차전이야.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 결과도 달라졌을 텐데…. 두 경기에서 나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유럽 선수들의 슛을 막을 수 있을까’라는 걱정 때문에 몸이 굳어 있었어. 두고두고 후회로 남을 순간만 늘어나게 된 셈이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팀의 중심을 잡아줄 네가 꼭 필요하다’는 임영철 감독님의 부름에 고민 끝에 대표팀 합류를 결정했었지. 4년 뒤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감독님이 혹시라도 같은 부탁을 한다면 나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분명 가슴속으로는 많은 고민을 하겠지만, 머리로는 안 된다는 결정을 내릴 거야. 태극마크를 다시 달기에는 체력적 한계가 있으니까. 하지만 리우 올림픽에서 좌절을 함께 나눈 언니로서 언제나 너희들 뒤에서 함께 뛴다는 마음으로 응원할게. 우생순 멤버들의 시대는 이렇게 아쉬움 속에 막을 내리게 됐네. 하지만 너희들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다시 한 번 한국 여자 핸드볼을 올림픽 정상에 올려놔야 한다는 것을 절대 잊지 마. 언제나 너희 뒤를 지키고 있던 골키퍼 영란 언니가.
리우데자네이루=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