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모두 알다시피 시간예술입니다. 음악의 아름다움을 백 마디 말로 설명한다 하더라도 한 번 들어보는 것만 못하고,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연주되는 시간이 지나버리면 다시는 들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음악을 눈으로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흔히 ‘악보’라고 불리는 기보(記譜)에 의해서입니다. 기보법은 시대나 지역, 작곡가나 학자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일반적인 악보는 5개의 선을 그어 그 선과 칸, 그리고 5선의 위아래에 덧줄을 그어 음자리표, 음표, 쉼표, 박자표, 조표와 임시표, 빠르기와 셈여림, 나타냄말 등을 기록해 작곡가가 의도하는 음악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림 1] 쇼팽(Frederic Chopin·1810∼1849)의 연습곡 ‘흑건’(Etude Op.10 No.5) 자필 악보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은 중세(4∼14세기경) 때 만들어진 그레고리오 성가(Gregorian Chant)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당시 여러 교회에서 다양하고 산만하게 불리던 성가를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재위 590∼604년)가 정리한 것으로 매일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드리며 사용했습니다. 당시 수도사들은 이 성가들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네우마(neuma)’라는 특수한 기호를 사용했습니다(8세기경). 네우마는 그리스어로 ‘부호’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말 그대로 정확한 음높이를 나타내기보다는 상대적인 음의 높낮이를 단순한 부호로 표시했습니다. 음이 올라가면 /, 내려가면 \, 올라갔다 내려가면 ∧ 등 세 가지 부호를 써서 선율의 형태를 적었던 것으로 음의 길이는 나타낼 수 없었습니다.
[그림 2] 성가의 가사 위에 표시된 음의 높낮이 기호 ‘네우마’
이러한 다성 음악의 발달은 결과적으로 음의 길이와 리듬, 박자표와 음자리표의 발전, 즉 기보법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또 남겨진 악보를 통해 기존의 음악을 참고로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는 일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교회음악과 함께 세속음악 또한 후대에 많이 전해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계이름이라는 훌륭한 음악교육 체계를 만들어 기보법의 발달에 큰 영향을 준 귀도 다레초(Guido d‘Arezzo·992?∼1050?) 기억하나요? 다레초는 계명창을 만든 것 이외에도 현재 5선보의 모태가 된 4선보를 정착시킨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상대적인 음높이만 알 수 있었던 ‘네우마’ 기보법에서 절대적인 음높이를 나타내주는 빨간색의 기준 선(F-계이름 ‘Fa’)이 나타나고, 뒤이어 그 위에 노란색(혹은 녹색·C-계이름 ‘Do’)의 줄이 등장해 비교적 정확한 음의 높낮이를 알 수 있게 됐답니다.
일반적으로 계이름 ‘Do’가 더 먼저 생겼을 것 같고, ‘Fa’ 선이 ‘Do’ 선보다 높게 있을 것 같은데 그 반대인 이유는 당시 불린 그레고리오 성가가 남성만 부를 수 있었기 때문에 남성의 음역대에 맞추었기 때문이지요. 그중에서도 특별히 이 두 음을 선택한 이유는 F와 C 바로 아래 음들이 반음 관계이므로, 다른 음들을 선택했을 때보다 어려운 반음 관계를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뒤로 2개의 선을 더 추가하여 4선보가 사용되었는데, 대신 처음 생긴 두 줄의 C와 F의 문자를 그 음정의 보표선 앞에 명시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높은음자리표(G clef)와 낮은음자리표(F clef), 그리고 가온음자리표(C clef)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림 3] 높은음자리표, 낮은음자리표, 가온음자리표 중 알토표
서양의 악보가 1000년에 가까운 역사 속에서 발전한 것이라면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당대에 우리의 글과 함께 음악을 정확한 길이와 높이로 기보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정간보는 한 줄을 32개의 井(우물 정)으로 나누고 칸마다 음높이와 음의 길이를 표시해 나타낸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정량(定量), 음의 길이를 알 수 있는 악보입니다.
[그림 4] ‘유초신지곡’ 의 정간보
[그림 5] 조지 크럼 ‘미크로코스모스’ 악보
[그림 6] 존 케이지 ‘트리오’
김선향 선화예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