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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송박사의 술~술 경제]규제의 미학 혹은 역설

입력 | 2016-08-17 03:00:00


최근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와 자동차 배기가스 조작 파문으로 기업 활동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기업의 잘못으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았다면 그에 상응하는 조치가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형사처벌이 뒤따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결과를 예방하기 위해 미리 기업 활동을 규제하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규제란 기업이나 개인의 경제활동에 정부가 제도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보의 불균형, 환경오염과 같은 외부 효과 등에 따른 시장의 실패가 정부 규제의 대표적인 근거입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나오는 매연이나 폐수는 환경을 오염시켜 많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정부가 규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시장의 실패에 따른 문제점은 정부가 공익 측면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규제가 필요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규제를 만드는 정부나 정치권이 모든 것을 공익적으로 판단할 능력을 지닌 전지전능한 설계자는 아닙니다. 정치권이 만들어 내는 규제 중에는 시장 실패의 보완 조치보다는 사익을 추구하는 특정 집단을 위해 경쟁을 제한하는 조치도 적지 않습니다. 선진국에서 농업이나 섬유산업 같은 사양산업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좋은 예입니다. 서비스산업에서 잠재적 공급자들의 진입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도 기존 서비스 공급자들을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입니다.

선진국이 농민과 섬유업자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조치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희생이 뒤따라야 합니다. 서비스산업에서 기존 사업자들이 누리는 이득은 규제로 인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다른 사업자들과 역시 높은 서비스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소비자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특정 집단에만 이득을 주는 규제는 왜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민주국가에서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은 선거로 선출됩니다. 한편 규제로 이득을 얻게 되는 특정 집단은 정책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압력을 행사합니다. 선거에서 다시 선택받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들은 이런 압력에 반응을 보입니다. 규제로 이득을 얻는 사람보다 피해를 보는 소비자가 다수인데도 그렇습니다. 규모가 클수록 집단을 효과적으로 조직하는 비용이 증가하고 무임승차자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소규모 집단이 자신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실현시키는 것이 유리합니다.

민주국가에서도 규제가 많아져 시장이 왜곡되면서 경제가 침체되고 여기서 탈피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이 더 많은 규제로 이어져 부정부패가 심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의 역할이 커질수록 규제의 유혹은 커집니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작은 정부를 실현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규제가 줄고 시장의 역할이 커지면 경쟁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이득은 소비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송원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