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 기념 콘서트 포스터. 46664는 만델라의 수감자 번호를 뜻한다.
조성하 전문기자
다음 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긴급 연설로 사태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경찰관에 대한 공격은 우리 모두에 대한 공격이며 사회를 작동하도록 하는 법치에 대한 공격이라고. 그러면서 인종이나 소속 정당과 무관하게 미국을 단합시킬 말과 행동에 집중하자며 사회통합을 강조했다. 맞는 말이고 절실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공허했다. 흑인과 백인이 서로 총으로 쏴 죽일 만큼 상황은 심각한데, 그걸 막자며 강조한 게 미국이란 국가 가치여서다. 수사(修辭)에 그친 듯한 느낌이었다. 흑백 양쪽의 심금을 울릴 좀 더 효과적이며 진정한 수단은 없었는지 아쉬웠다.
1990년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 정부의 남아프리카공화국 상황은 이보다 훨씬 심각했다. 당시 흑인의 저항은 폭동으로, 백인의 진압은 학살 수준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내전으로 비화할 게 뻔했다. 그런 위기감에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대통령도 결단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흑백 공존이다. 그러자면 종신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 넬슨 만델라를 석방해야 했다. 비밀접촉을 통해 그는 흑백통합정부 수립을 제안했고 만델라도 수용했다. 만델라 지지자들의 반대는 거셌다. 제거 대상인 백인정부를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부에서 일을 하라니…. 하지만 만델라는 동료들을 설득했고 함께 일하도록 했다.
그러면서도 꿈을 버리지 않았다. 전 국민이 참여하는 자유선거였다. 그의 굽힘 없는 투지에 데클레르크 대통령도 두 손을 들었다. 1994년 자유선거는 그렇게 실시됐고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국민당을 압도했다. 만델라가 대통령에 추대된 것이다. 그는 꿈을 이뤘다. 총과 폭력이 아니라 대화와 협상으로. 그러고는 자신이 그려온 나라를 만드는 데 착수했다. 흑인과 백인이 한데 어울려 사는 무지개 같은 나라를. 이듬해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월드컵은 그 꿈의 실현무대였다. 그 이야기는 영화 ‘인빅터스(Invictus)’ 그대로다. “이건 단순한 경기가 아니다. 적대해온 흑인과 백인이 처음으로 하나의 가치(남아공)를 공유하는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다.” 그 말 그대로였다. 최약체 남아공이 우승후보 뉴질랜드를 꺾고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순간, 남아공에선 흑백의 구별이 사라지고 찬란한 무지개가 떴다.
우연의 일치지만 롱이 경찰관을 저격한 날(17일)이 남아공에선 넬슨 만델라 생일(18일)이었다. 유엔은 2010년부터 이날을 ‘국제 넬슨 만델라의 날’로 기념해 오고 있다. 그래서 이날 지구촌에선 ‘만델라를 위한 67분(67 Minutes for Mandela)’이 줄을 이었다. 모르는 타인에게 67분간 친절을 베푸는 운동이다. ‘67’은 변호사로서 흑인인권투쟁을 개시한 1942년부터 유엔이 ‘넬슨 만델라의 날’을 선포한 2009년까지의 인권운동 역정(67년)을 상징한다. 국제기념일 137개 중에 유엔이 선포한 건 107개로 이 중 특정인 이름으로 명명한 건 만델라 전 대통령뿐이다. 밀워키(위스콘신 주) 비상사태 선언(14일)으로 전쟁 양상으로 치닫는 미국의 흑백 갈등, 그걸 풀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뿐. 하지만 아쉽기만 하다. 그에게선 넬슨 만델라의 지혜가 보이지 않으니.
조성하 전문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