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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우지희]노쇼의 권리와 매너 사이

입력 | 2016-08-18 03:00:00

<No show>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

퇴근 후 페디큐어 서비스를 예약해 둔 날이었다. 업무 마무리가 늦어지면서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을 것 같아 전화를 걸어 양해를 구했다. 바쁜 마음으로 허겁지겁 도착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자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아유, 10분도 안 늦으셨는데 뭘 이런 걸로 그러세요. 더한 분도 많은걸요.”

예약을 해 놓고 아무 말 없이 나타나지 않는 소위 ‘노쇼(No show)’에 대한 불만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최근 노쇼 고객으로 인한 요식업계의 피해가 방송에서 이슈가 되었는데, 미용업계 또한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대일로 고객을 응대하는 업종 특성상 말없이 손님이 나타나지 않으면 고스란히 수익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것이라 매출에 치명적인 손실을 입는다며 볼멘소리를 한참 했다.

그러자 옆에서 손톱을 다듬던 손님이 다른 이야기를 보탰다. “요즘 그런 비매너가 ‘꿀팁’으로 공유되는 세상이라니까요.” 극장에서 보려던 영화가 거의 매진 상태라 구석 자리를 겨우 구했는데 막상 상영관에 들어가니 정작 가운데 좌석에는 관객이 드문드문 앉아 있더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요즘 소위 ‘편하게 영화 보는 비결’로 자신이 원하는 좌석 주변을 몽땅 다 예매한 다음, 상영 20분 전에 모두 취소해 다른 사람이 앉지 못하게 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단다.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려 자신의 이익은 챙기고 재예매 가능성은 낮춰 버리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싼 좌석과 비싼 좌석을 동시에 예매해 마찬가지로 후자를 취소한 다음 그 자리에 앉아서 관람하는 더 심한 얌체족도 있다고 했다.

그러자 이러한 노쇼를 두둔하는 이가 나섰다. 폭염을 피해 극장을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이미 관람한 영화를 또 보면서 상영 중에 다음 장면에 대해 큰 소리로 동행인에게 말하는 ‘민폐족’들 때문에 그런 비결이 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반대편 얘기를 듣고 보니 납득이 되기도 했다.

여기까지 이야기가 미치자 모두 ‘착하게 살면 바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물론 그런 행동들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내가 만난 적도 없는 사람을 위해 배려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자조가 흘러나왔다. 나는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집에 오는 길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타인보다 자신을 우선시하는 것이야 인간의 본능이다. 하지만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마음껏 남에게 피해를 주어도 된다고 믿는 일부 소비자의 행태는 기함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악의적이다. 그렇다고 이런 행태를 방지하기 위해 노쇼 고객에 대한 위약금이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 해도, 그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가 생길 수 있어 당장 시행되기도 어려워 보인다. 결국 이러한 얌체족 때문에 정작 그 시간에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허탕을 치게 되고, 업장에서는 잠재적 고객을 잃어버리는 매출 손실이 일어나고, 이런 손실에서 일어나는 불편함이나 가격 상승 등은 결국 일반 소비자가 부담하게 되니 점점 더 악순환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해결책은 역시 자발적인 의식 개선뿐이다. 근본적으로 권리와 매너는 반대 개념이나 비교 대상이 될 수 없고, 오히려 두 가지는 반드시 양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주어진 ‘예약을 취소할 권리’를 활용하는 것뿐이라며 당당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 반면에 매너를 지켜야 한다며 미지의 타인에게 배려만 하면서 매번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 두 가지 사이의 어느 지점이 우리가 찾는 올바른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 사정이 있어서 그렇다고 합리화하며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는 노쇼가 다른 이의 시간과 수익을 빼앗아 갈 수 있다는 것과,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경우 결국 나 자신이 노쇼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적어도 성숙한 시민이라면 자신의 권리 주장 이전에 타인을 위한 기본적인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한동안 인간이 되지 못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던 어떤 영화의 대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던 저녁이었다.

우지희 능률교육 콘텐츠개발본부 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