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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굴서 큰 연재, 이젠 호랑이 잡을 때

입력 | 2016-08-18 03:00:00

러 체조, 경쟁자 손연재 키운 이유는
국가당 올림픽 쿼터 2명으로 제한… 러 마문-쿠드럅체바 금, 은 유력
앙숙 우크라의 동메달 원치않는 러… 대항마로 손연재 받아들여 훈련




16일(현지 시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 광장에서 산책 중인 리듬체조 손연재 선수. 리우데자네이루=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빗대자면 태릉선수촌에서 활을 쏘는 코소보 양궁의 기대주랄까.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러시아 리듬체조 국가대표 선수들과 모스크바 노보고르스크에서 훈련해 온 손연재(22·연세대)의 모습이 그렇다.

손연재가 결전의 땅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한 건 15일 오후 10시경(현지 시간). 경쟁자 간나 리자트디노바(우크라이나)와 멜리치나 스타뉴타(벨라루스)가 일찌감치 리우 올림픽 선수촌에 짐을 풀고 훈련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늦었다. 다음 날인 16일, 경기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지만 손연재는 휴식을 취했다. 이미 8월 초부터 상파울루에 캠프를 차리고 러시아 대표 선수들과 강도 높은 훈련을 해왔기 때문이다.

손연재는 어느덧 러시아 리듬체조 대모이자 국가대표 팀의 수석코치인 이리나 비네르가 이끄는 리듬체조 사단의 ‘핵심 선수’가 됐다. 리우 올림픽 리듬체조에서 비네르 사단은 세계 최강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마르게리타 마문, 야나 쿠드(렵,엽)체바 등 러시아 선수와 손연재의 금, 은, 동메달 석권을 노리고 있다.

손연재가 처음부터 비네르 사단의 ‘핵심 선수’였던 건 아니다. 손연재는 노보고르스크의 문을 두드린 세계 각국의 유망주 중 한 명일 뿐이었다. 손연재는 2008년 말부터 노보고르스크에서 1년에 몇 차례씩 집중교육을 받으며 시니어 무대를 준비했다. 하지만 단기 교육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 손연재는 2010년 비네르 코치에게 “더 머무를 수 없냐”고 물었고 손연재의 성실함과 발전 가능성을 눈여겨본 비네르 코치는 ‘OK 사인’을 내렸다. 물론 그때까지도 비네르 코치의 눈에 손연재는 러시아 선수들보다 한 수 아래였다. 함께 훈련하고 있는 중국, 일본 등 다른 아시아권 선수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손연재는 4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5위에 오르며 경쟁력을 증명했고, 이번 시즌에도 개인 최고점을 경신하며 꾸준히 월드컵에서 시상대에 오르는 등 러시아 선수들을 위협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품어줬던 유망주가 자국 선수들을 위협하고 있지만 비네르는 느긋하다. 국가당 올림픽 리듬체조 개인종합에 출전할 수 있는 선수가 두 명으로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동메달이 러시아 선수가 아닌 다른 나라의 선수에게 돌아가야 한다면 그 주인공은 자신의 사단에 속한 손연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게다가 강력한 동메달 후보는 우크라이나의 리자트디노바와 벨라루스의 스타뉴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세계 리듬체조계에서 최대의 앙숙이다. 동메달을 놓고 겨루는 손연재와 리자트디노바의 경쟁 뒤에는 비네르 사단으로 대표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리듬체조의 자존심 싸움도 숨어있는 것이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