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위험지역 활성단층 지도 만든다
최정헌 기초연 연구원이 쇠파이프를 단층에 박고 있다. 이렇게 채취한 토양은 암실로 옮겨 햇빛을 받지 않은 채 땅속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 알아볼 수 있는 루미네선스 연대측정(OSL) 과정을 거친다. 경주=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
자동차로 낡은 포장도로를 달려가던 중 ‘○○○ 연수원’이라고 쓰인 녹슨 입간판 하나가 스쳐 지나가자 동승했던 지질전문가가 말했다. 당시 기업체가 공사 중단의 근거로 삼은 것은 ‘활성단층(Active fault)’이었다. 예보가 어려운 지진 활동을 비교적 정확하게 유추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근거 중 하나다.
최근 지질학계에 이 같은 활성단층 연구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기초연)과 부경대 등이 참여하는 ‘국가 활성단층 정비기획단(이하 기획단)’을 발족해 전국적인 지질조사를 시작했다.
○ 땅에 쇠파이프 박아 연대 측정
이달 3일 오후 경북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 일대. 기획단 연구진과 함께 차에서 내려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모기가 득실대는 수풀을 헤치며 걸어 들어가자 틈새가 갈라진 단층이 나왔다. 1990년 말 발견된 ‘수렴단층’이다.
최정헌 기초연 지구환경연구부 책임연구원은 30cm 길이의 쇠파이프를 꺼내 망치로 두들겨 땅에 박았다. 이 파이프를 다시 잡아 뽑자 파이프 안에 흙이 빼곡히 들어찼다. 연구실에 돌아가 실험할 시료를 채취한 것이다. 이 시료를 암실에서 분석하면 시료가 마지막에 빛에 노출된 시점이 언제인지 파악할 수 있다.
최 연구원은 “시료를 루미네선스 연대측정(OSL)이란 방법으로 조사하면 지진 활동 여부를 알 수 있다”면서 “현재까지 실험 결과 수렴단층은 약 19만 년 전 강한 지진 활동이 있었던 지역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장답사에 참여한 김영석 부경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지하 5∼15km 깊이에 진앙이 존재하고 규모도 6.0 이상으로 커야 단층이 생긴다”면서 “이 뜻은 재발 확률이 매우 높은 지진만이 땅속에 기록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 원자력발전소 등 위험시설 위한 ‘안전지대’ 탐색
기획단이 전국 각지에 쇠파이프를 꽂고 다니는 이유는 한 가지다. 전국의 지질구조를 조사해 전국의 ‘지진 안전지도’를 그리는 것이 목적이다. 제작된 자료는 원자력발전소 등 중요 시설의 부지 선정을 위한 기초 자료로 쓸 수 있다. 기획단은 현재 경주를 비롯해 포항, 울진, 정동진, 고리 일부 지역의 조사를 마쳤다.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국가활성단층도’ 제작에 돌입할 예정이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단층 지대. 현재까지 60여 개가 발견됐으며 수렴단층처럼 동해안 지역에서 주로 발견된다. 사진 출처 한국지질학회지
그러나 기획단은 지진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 교수는 “땅속에 기록된 역사를 보면 규모 6.0 이상의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 적이 많다”며 “앞으로 같은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지진에 취약한 일본은 1900년대 초반부터 일본 전역의 지질 조사를 진행해 활성단층 지도를 완성하고 2000개 이상의 활성단층을 발견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최 연구원은 “국내 지도는 아직 10%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라며 “수십 년의 장기 계획을 통해 상세하게 활성단층지도를 완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주=권예슬 동아사이언스 기자 ys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