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선 의원들의 ‘여의도 3개월’
《“국가 이익을 우선으로 해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20대 국회의원들이 81자 분량의 선서를 읽으며 국민 앞에 각오를 다진 지 3개월 가까이 흘렀다.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한 20대 국회는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의 강한 염원 속에 출범했다. 누구보다 국민의 요구를 잘 알고 있을 이들은 그전까지 국회 밖에서 국회를 지켜보던 여야 초선 132명일 것이다.
새누리당 김정재 의원(경북 포항북),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서울 노원갑)을 통해 의지가 충만한 새내기 의원의 ‘좌충우돌 국회 적응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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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정재 의원(오른쪽)이 7월 8일 당 소속 의원 129명 전원이 참석한 청와대 오찬 간담회를 마치고 국회로 돌아와 의원회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정재 의원실 제공
김 의원은 4·13총선 때 경북 포항에서 당선되며 국회에 첫발을 디뎠다. 20대 국회 영남권 유일의 여성 의원, 당내 6명의 지역구 여성 의원 중 유일한 초선 등 다양한 타이틀도 따라붙었다. 5월 30일 20대 국회가 개원한 뒤 숨 가쁘게 보낸 3개월여에 대해 김 의원은 “아직도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7월 마지막 주말 김 의원은 오전 8시부터 내리 당 소속 포항 시도의원 17명을 만났다. 2시간씩 지역 민심을 듣는 자리들이 이어졌다. 한 시의원은 “이 지역에서 10여 년간 기초의원을 했지만 국회의원과 일대일 면담을 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단다. 그간 6선의 이상득 전 의원처럼 다선 의원을 봐왔던 포항시민에게 국회의원은 ‘먼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김 의원은 자신을 향한 주민들의 바람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누나 같고, 언니 같고, 친구 같고, 딸 같은 ‘가족 같은 정치인’. 지역에 가면 수행 비서를 옆자리에 태우고 직접 운전하거나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의원은 “골목까지도 눈에 더 잘 익히고, 어느 길이 불편한지 피부로 알아야 해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여성, 초선이라고 괜한 말이 나올까 지역 관리도 유별나다. 국회에 있을 때도 지역의 작은 행사까지 챙겨 주최 측에 꼭 격려 전화를 한다. 사무실의 제일 눈에 띄는 곳에는 2000여 명의 지역 책임당원 명부를 놔뒀다. 짬 날 때마다 당원들과 전화해 소식을 나누기 위해서다. 김 의원은 “오늘은 너무 바빠 한 통화도 하지 못했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처음에 김 의원은 스스로를 ‘의회 베테랑’으로 생각했다. 서울시의회에서 상임위원장까지 해봤다는 자신감에서였다. 하지만 착각이었음을 금세 깨달았다. 5월 원내대변인을 맡아 첫 ‘백브리핑’을 하는데 기자 수십 명이 질문을 퍼붓자 무엇을, 얼마나 설명해야 할지 몰라 앞이 깜깜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국회에서 ‘초선은 아기나 다름없다’고 하던데 정말 여기서 하는 모든 일이 태어나서 처음 하는 일같이 생소하더라”고 말했다.
‘체급’이 올라가면서 되레 일 처리가 쉽지 않은 상황도 종종 빚어진다. 시의원일 때는 어떤 현안이 문제다 싶으면 담당 공무원과 직접 전화해 현장에 즉시 나갔다고 한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니 정부 부처에 자료를 요청해도 며칠씩 걸리고, 공무원과 함께 현장에 가보려 해도 부처 내 보고도 복잡하고 지자체장까지 움직이니 엄두가 안 난다”고 말했다.
원내대변인에 새누리당의 ‘심장’ TK 출신이다 보니 정쟁의 최전선에 서기도 했다. 7월 1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에서 김 의원은 미래창조과학부와 관련해 준비해온 정책 질의서를 옆으로 밀어 놨다. KBS 보도에 개입한 정황을 담은 ‘이정현 녹취록’을 놓고 여야 간 공방이 벌어진 여파였다. 김 의원은 “전문가 출신 비례대표는 준비해온 정책 질의를 그대로 했지만 누군가는 대응해야 하니까 제가 총대를 멨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치인이 되는 길을 조금씩 터득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여성 정치인’의 옷이다. 여성 의원들은 대개 빨강, 파랑 등 원색의 정장을 즐겨 입는다. 선명성을 강조하고 주목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이를 모르던 김 의원은 무난한 검은색이나 남색의 정장을 입고 다녔다. 어느 날 지역 행사에서 마주친 한 어르신이 “우리 김 의원은 칙칙하게 입어서 어디 눈에 띄지도 않노”라며 서운해하더란다. ‘아차’ 싶었다.
달걀로 바위 치듯 선거를 치르며 김 의원은 시력이 상당히 나빠졌다. 온종일 나다니고 신경을 곤두세운 탓에 시력이 교정술을 받기 전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안경도 잘 쓸 수가 없다. 원내대변인이라 카메라 앞에 자주 서니 쓰지 말란 권유가 많았다. 김 의원은 “글자가 안 보여서 곤혹스러울 때가 많다”며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구나 싶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매일 오전 6시면 국회로 향한다. 다만 이른 출근이 보좌진에게 부담을 줄 수 있어 가능한 한 조출(早出)을 줄이려고 한다. 차량에는 조문용 정장, 행사용 점퍼 등과 언제 어디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여행가방을 항상 싣고 다닌다. 김 의원은 “‘땀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낮은 자세로 제대로 일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점심 대신 미숫가루 한 잔을 후루룩 들이켜고 다시 브리핑을 하러 정론관으로 향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새누리당 김정재 의원은…
1966년생. 경북 포항 토박이로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학·석사)와 미국 프랭클린피어스 법과대학원을 졸업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사무부총장이던 이성헌 전 의원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7·8기 서울시의원을 지냈다. 2014년 당 포항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이후 2년여 고향에서 표밭을 다져 20대 국회 ‘영남 유일의 여성 의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