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기행/나디아 허 지음·남혜선 옮김/408쪽·1만7000원·어크로스

동물원은 철저히 인간을 위한 공간이다. 인간 세상의 풍파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밖에 없다. 대만 소설가이자 잡지사 편집자인 저자는 런던, 베를린, 로마, 상하이 등지에 있는 동서양의 14개 동물원을 통해 혁명, 전쟁, 외교, 예술 등 인간사의 면면을 조명한다. 단편 영화 제작, 번역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경험을 활용해 영화, 음악, 문학, 미술 등에 대해 종횡무진 써내려 갔다.
베를린 동물원은 대공황을 견딘 끝에 대대적으로 리모델링돼 울타리 대신 도랑을 파는 개방식으로 지어졌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때 도시에 영국군의 집중 폭격이 쏟아져 동물원에 있던 3715종 가운데 사자 두 마리, 코뿔소 한 마리 등 91마리만이 겨우 살아남았다.
뒤에 실린 동물원 연대기에는 프랑스 대혁명 발발, 청나라 멸망을 비롯해 다윈이 ‘종의 기원’을, 밀란 쿤데라가 ‘느림’을 각각 출간하고 영화 ‘마지막 황제’가 오스카 9개 부문을 석권한 시기 등이 정리돼 있다. 책의 성격을 압축적으로 보여 준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