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눌러도 응답없어… 창문 블라인드 사이로 불빛만
19일 오전(현지 시간) 영국 런던 북부 일링 지역 주택가에 자리 잡은 북한대사관. 1, 2층 창문에 내려진 블라인드는 외부의 시선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철제 담장에 매달린 우편함(왼쪽)에 수북이 꽂힌 우편물은 태영호 공사 탈북 이후 대사관 운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을 상징하는 듯했다. 런던=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동정민 특파원
대문 앞에 걸린 검은색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가득 차 입구 밖으로 삐져나와 있었다. 대사관에 장기 칩거하고 있는 대사관 직원들은 문 앞 우편물도 수거할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현지 소식통은 “당 지도부인 태 공사가 직원들의 우편물을 검사하는 역할을 했을 텐데 태 공사가 사라진 한 달 동안 대사관 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우편물 중에는 유명 가구점인 ‘이케아’ 같은 생활 관련 홍보책자도 들어 있었다. 외교관들이 대사관 안에서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북한 특유의 시스템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12월 본국으로 복귀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대사관 직원 이름으로 된 우편물도 있었다.
이곳에서 9년째 머물고 있어 현지 사정을 잘 아는 김주일 국제탈북민연대 사무총장은 “지금 북한대사관은 외부인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 본국의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며 “태 공사는 당 지도부로 실질적인 관리자 역할을 하며 실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과 달리 변두리에 자리한 북한대사관을 찾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대사관에는 당연히 걸려 있어야 할 국기나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도 없었다. 지역 주민들이 북한대사관이 있는 것을 워낙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01년 북한이 주택을 구입해 대사관을 설립할 때도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이곳에는 현재 현학봉 대사와 다른 직원 가족이 거주하고 있다. 당시 약 130만 파운드(약 19억1553만 원)를 들여 구매한 2층짜리 건물 뒤에는 꽤 넓은 마당도 있어 과거 사정이 좋았을 때는 외부 손님들이 초대된 리셉션도 열렸다고 한다.
현지 외교가의 가장 큰 관심사는 현 대사가 언제 본국으로 소환될지다. 현지 소식통은 “현 대사는 북한에 가족을 남겨 놓고 혼자 나와 있어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며 “워낙 큰 건이라 본국 소환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