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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스볼 피플] KIA 고효준,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입력 | 2016-08-22 09:30:00

SK에서 KIA로 이적한 고효준이 환골탈태했다. 불펜이면 불펜, 선발이면 선발 필요할 때마다 호투를 하며 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와일드해 상대에게 위협감을 줬던 자신의 투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절박함이 너무 강하면 부러지는 상황이 오더라구요.”

고효준(33)은 좌완 파이어볼러다. 왼손투수로 150㎞에 가까운 직구를 던졌다. 그러나 많은 강속구 투수들이 그렇듯, ‘제구 불안’이라는 문제에 부딪혀왔다. 누구보다 답답한 건 본인이었을 것이다. 그런 고민을 거듭해 온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투구하는 영상을 보고 깨달았다. 마운드에서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고, 심리적으로 어딘가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를 찾으려’ 했던 행동들은 그렇게 더욱 꼬여가고만 있었다.

고효준은 SK가 2000년대 후반 ‘왕조’를 구축했을 때 주축으로 뛰었다. 특유의 ‘와일드함’을 바탕으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왼손투수의 이점을 십분 발휘했다. 2009년엔 생애 첫 두 자릿수 승리(11승)도 거뒀다.

그러나 병역의 의무를 마치고 팀에 돌아온 2014년 이후 고효준은 과거 SK 왕조를 지켰던 그 모습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선수 구성에 큰 변화가 있었고, 달라진 SK 마운드에서 그는 자신에게 온 기회를 완전히 살려내지 못했다.

그렇게 입지는 점점 줄어갔다. 급기야 고효준은 SK에 트레이드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몇몇 팀과 얘기가 오갔지만, 카드가 맞지 않아 좀처럼 진행이 되지 않았다. 답답함이 계속될 때쯤, 트레이드 마감을 앞두고 극적으로 KIA행이 결정됐다. SK 초년병 시절, 최고참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김기태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는 팀이라 더욱 반가웠다.

고효준은 “SK는 좋은 팀이다. 그러나 더 이상 내게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SK에서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KIA엔 인연이 있는 감독님이 계셨다. 감독님이 어떤 생각을 하시고 어떤 주문을 하실지 좀더 잘 알 수 있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KIA 고효준.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KIA 이적 후 8경기서 방어율 1.38. KIA에 부족한 왼손 불펜 역할을 해냈고, 선발진 구멍이 생기자 18일 사직 롯데전에서 ‘대체 선발’로 나서 5이닝 1실점으로 호투했다. 불펜 난조로 승리는 날아갔지만, 선발로도 ‘환골탈태’한 모습은 그대로였다. 최고 147㎞의 강속구는 이제 제구까지 되는 강력한 무기였다. 21일 광주 LG전에선 재차 불펜으로 나와 1.1이닝 무실점으로 1점차 위기를 막았다.

무엇이 좋아진 걸까. 고효준은 “이적하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아무래도 환경이 바뀐 게 가장 큰 것 같다. 심리적 요인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실 달라진 건 분명히 존재한다. 그는 이적 직후 ‘와일드함’을 강조해왔다. 고효준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거칠고 와일드한 투구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 떠난 셈이었다. 그는 “내 느낌은 상대 타자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고효준’이란 느낌이 없어진 것만 같았다. ‘고효준’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었는데 그게 사라지니, 타자 입장에선 날 쉽게 보고 들어올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와일드함을 원했던 건 비록 컨트롤이 조금 안 될 지라도 고효준이란 상대하기 어려운 이미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옷, KIA 유니폼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이 있었다. 최고의 시즌을 보냈던 2009년, 한국시리즈 무대에서 KIA에 무릎을 꿇었다. 고효준은 “2009년 KIA는 정말 무서웠다. 기가 정말 셀 때였다. 상대편이었지만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젠 내가 KIA가 우승할 때 분위기를 재현해보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명노 기자 nirv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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