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유럽자금총책 망명 막전막후
노동당 39호실 유럽 자금총책 김명철 씨는 유럽에서 외국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북한의 비자금을 능숙하게 분산 관리하던 전문가로 알려졌다. 김 씨가 갖고 잠적한 차명계좌 중엔 인도인 명의의 계좌도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 씨는 인도인 명의의 차명계좌에서 돈을 찾기 위해 예금주의 위임장을 지닌 변호사를 차명계좌가 있는 은행에 보내 다른 은행에 있는 자신의 계좌나 현지처 명의의 계좌에 돈을 입금시켰다. 이후 김 씨가 돈이 입금된 은행 지점에서 매니저를 만나 인출했다. 인도인은 김 씨가 조작한 가상의 인물이다. 김 씨는 유럽의 많은 중소은행들이 예금 유치만 중시한다는 허점을 파고들어 이런 방식을 활용해 다양한 차명계좌를 관리했다고 한다.
북한 인사 명의의 계좌는 서방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북한은 자금세탁 블랙요원을 활용해 비자금을 숨겨왔다. 김 씨 정도 레벨의 ‘기술자’는 북한에 몇 명 되지 않아 북한 당국의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김 씨는 평양엔 본부인을, 해외엔 현지인 부인을 두는 이중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식은 북한 부인에게서만 낳는다는 노동당의 원칙 때문에 현지인 부인과는 자녀를 두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의 마음이 떠난 배경에는 북한의 과도한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몇 년 전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외화 획득 과제를 부과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가족 중 한 명을 터무니없는 구실로 국가안전보위부 감방에 가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자주 쓰는 가족을 인질로 하는 압박전술이었다. 그래도 김 씨가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자 구속된 가족을 고문하기 시작했고 결국 가족이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경우 해외 요원은 철수시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김 씨를 대체할 인물이 없어 즉각 소환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김 씨가 분노해 망명길에 오르게 했다. 김 씨 가족을 숨지게 만든 보위부 요원은 처벌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현재 서방 국가의 보호 아래 주기적으로 은신처를 옮기며 잠적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씨는 한국에서의 신변 안전 문제, 미국의 독재자 자금 전액 몰수 정책 때문에 망명지를 어디로 선택할지를 두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