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영조는 자신의 생활습관을 분석한 뒤 원인을 찾아냈다. 영조가 지목한 원인은 혹서를 피하려고 탐닉한 차가운 음료와 과일이었다. 승정원일기는 온산보중(溫散補中)으로 치료법을 잡았다고 전한다. ‘온기로 한기를 흩고 내부를 보호해준다’는 뜻이다. 처방된 삼소음(蔘蘇飮)과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도 이 같은 원리로 작용한다. 두 처방 모두 지금도 여름 감기에 자주 사용된다.
이후 영조는 더위 나기 예방책으로 음력 섣달 말의 분변을 건조시켜 끓인 ‘마통차’ 혹은 ‘마분차’를 마셨다. 왕이 이런 음식을 좋아할 리 없었겠지만 증상을 치료하고 예방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마분차는 요즘으로 치면 감기 백신과 비슷했다.
혹서에도 찬 음료와 빙과류를 탐닉하지 않아야 건강한 여름 나기를 할 수 있다. 코와 목덜미로 파고드는 에어컨의 바람은 잠깐의 ‘피서’가 되겠지만 오랫동안 노출되는 일이 반복되면 좋지 않다.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이나 그 후에 생기는 감기 증상은 영조가 진단한 것처럼 찬 것을 탐닉한 결과라고 보면 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통계에 따르면 1년 중 알레르기비염 진료 환자가 가장 많은 달은 여름이 끝나는 9월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여름, 이열치열(以熱治熱)은 강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자연의 담금질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