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
그로부터 꼭 8개월 전인 그해 4월 25일에 조선의 27대 국왕 순종이 승하했다. 다이쇼보다 다섯 살 위인 순종은 다이쇼처럼 어릴 적부터 병약했는데 다이쇼와 달리 대를 이를 후사가 없었다. 그리고 통치할 국가도 없었다. 그의 공식 명칭은 ‘이왕(李王)’이었다. 왕위 승계 1순위는 동생 영친왕인데, 바다 건너 도쿄에 살고 있었다. 거기로 강제 이주한 지 19년째였다.
1926년 6월 10일. 조선의 마지막 왕이 마지막 길을 떠나는 국장의 운구가 아침 일찍 창덕궁의 돈화문을 나섰다.
깊은 슬픔과 성난 불길이 뒤엉킨 그날의 민심을 신문은 그렇게 옮겼다.
‘왕 전하와 이강 공 전하께서 각각 마차에 올랐다. 8시 정각, 장의 행렬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제의 어린 시절부터 시종해온 궁녀들이 몸부림치며 부르짖고 통곡했다.’
왕 전하는 순종의 동생이자 고종의 막내아들인 영친왕을 뜻한다. 그는 이제 ‘이왕’의 지위를 계승했다. 이강 공은 둘째 의친왕. 이들 이복 삼형제는 7년 전 아버지 고종의 장례 때 세 대의 마차에 분승해 상여를 따랐는데, 이제 두 형제가 맏형의 상여를 따라간다.
이들의 배다른 여동생 덕혜옹주는 참석하지 못했다. 도쿄의 영친왕 집에서 같은 시각 고국을 향하여 눈 감고 묵념을 올렸다고 신문은 전했다. 38세 차이의 큰오빠 순종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영친왕과 함께 귀국해 임종하고서 다시 도쿄로 건너간 지 한 달째다. 1년 전 고국을 떠나 강제 이주한 덕혜옹주는 열네 살, 동경여자학습원 학생이었다.
그렇게 전통의 토대가 유실된 채로 격동의 시간을 거쳐온 조선의 후예들은 남북 두 팀으로 나뉘어 참가한 올림픽의 열기와 덕혜옹주의 이름을 따온 영화의 가상현실 속에서 더운 8월을 지나고 있다.
박윤석 역사칼럼니스트·‘경성 모던타임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