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여자골프 금메달리스트 박인비. 사진=ⓒGettyimages이매진스
※ ‘골프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가 21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골든그랜드슬램’이라는 신화를 썼다. 박인비의 쾌거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한국인에게도 하나가 되는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다. 미국 뉴욕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스포츠동아의 독자 이상민씨가 박인비의 경기를 지켜본 소감과 생각을 전해 왔다.
오늘 참 신기한 일이 생겼다. 이상하게도 내가 열심히 응원하는 팀이나 선수는 곧잘 하다가도 내가 막상 보는 게임은 허무하게 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이번 올림픽 축구도 시간이 맞지 않아 8강 올라갈 때까지는 중계를 보지 못하다가 온두라스 게임은 열심히 보면서 응원을 했더니 결국 허무로 그쳤다.
그런데 오늘 여자 골프는 달랐다. 아침 일찍 기상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응원을 시작했다. 끝까지 침착하게 게임에 임한 박인비 선수가 18번 홀에서 4타를 샌드에서 탈출해 홀컵에 붙이고 달가닥 소리를 내며 파로 금을 확정짓는 순간 찔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손뼉을 치며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내 옆에 앉아 있던 애견 버니가 놀라서 도망을 갔다.
뉴질랜드로 이민 간 이번 올림픽의 은메달리스트 리디아 고는 아직 박인비 선수의 기록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미 그 나라의 대단한 영웅이 됐다. 언젠가 리디아 고가 이런 얘기를 했다. 한국으로 역이민 하고 싶어도 뉴질랜드 정부가 너무 잘해주고 전 국민이 성원해 주기 때문에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고.
그런데 우리는 어땠나. 박인비 선수의 전성기 시절, 그런 전적을 갖고도 미쉘위보다 연소득이 못한 이유가 분분했다. 인물이 떨어져 스폰서가 없어서 그렇다는 둥 저러다가 곧 무명선수가 될 거라는 둥 성원을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용기를 잃게 하는 말을 했다. 지난 2년간 부상으로 인해 박 선수의 성적이 부진했다. 그래도 세계랭킹 3위를 유지하며 올림픽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박인비는 골프의 강국으로 유일하게 네 명이 참가할 수 있는 나라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최근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도처에서 박인비를 선수 명단에서 빼야한다 아니면 자진해서 빠지는 것이 원칙이라며 얼토당토않은 얘기들을 해댔다. 이런 말들이 올림픽에 참가하는 자국의 선수에게 할 수 있는 얘기란 말인가. 이런 말들이 박인비 외에 다른 선수들에게도 용기를 줄 수 있는 얘기란 말인가.
나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반박을 했다. 기준에 맞춰 올림픽 참가 자격을 당당히 획득했는데 규정을 바꾼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고. 당신 같으면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자격을 갖추고도 양보할 수 있겠냐고. 응원은 못할망정 실망은 주지 말자고.
그리고 이번 리우 올림픽은 통쾌한 승리와 값진 교훈을 우리 국민에게 안겨준 소중한 올림픽으로 기억할 것이다.
성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박인비 선수가 명단에서 빠졌으면 어쩔 뻔했나. 인터뷰 중 은근히 박 선수는 벌써 은퇴를 생각한다고 한다. 가정도 있고 앞으로 더 젊어질 리는 없단다. 이번 승리 후 박인비가 은퇴를 하든, 설사 성적이 부진해 최하위 선수가 된다 해도 우리는 이 선수를 길이길이 존중하며 영웅이란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자기 나라에서 태어나지도 않고 그들의 피가 전혀 섞이지도 않았지만 국위선양을 한 고 선수를 영웅으로 인정하며 성원해주는 이웃나라를 보며 우리는 한 수 배워야한다.
그리고 난 용기를 갖는다. 내가 중계방송을 봐도 내가 응원하는 선수가 통쾌한 승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소심해지지 말고 열심히 중계방송을 보며 응원을 해야겠다.
이상민(미 뉴욕 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