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담보대출 규제 강화 이후… 부동산 시장 ‘극과 극’ 1%대 저금리에 갈 곳 없는 돈 몰려… 한강변-역세권 역대 최고가 경신 강남 4구 전세는 5주 연속 하락세… 전문가 “한꺼번에 매물 쏟아질수도”
대기업의 대리급 사원인 박모 씨(34)는 최근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재건축 아파트를 사기 위해 주말마다 공인중개사무소를 찾는다. 그가 찾는 아파트는 전용면적 75m²로 시세는 8억5000만 원 선. 경기 과천에서 전세를 살고 있는 그에겐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5억 원 이상을 대출 받아 매입자금을 마련할 계획이다. 박 씨는 “지금 아니면 영영 ‘강남 입성’을 못 할 것 같다”며 계약을 서두르고 있다.
○ ‘규제 무풍지대’ 강남 재건축
정부의 잇단 대출 규제에도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값이 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달 시작된 중도금 대출 규제와 ‘분양보증 조이기’가 고가 아파트 시장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매수세가 한 달 남짓 만에 회복된 것이다.
지역별로는 고덕, 둔촌주공 등 철거가 임박한 강동구의 재건축 아파트가 지난주에 1.04% 올랐다. 강남구와 서초구도 각각 0.48%, 0.30% 상승하며 오름폭을 키우고 있다. 특히 한강변, 지하철 3호선 역세권 등에 위치한 일부 단지들은 역대 최고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다음 달 재건축 정비계획안 공람을 앞둔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전용면적 82m²가 이달 초 18억5000만 원에 팔렸다. 지난달 초보다 1억 원 넘게 오른 가격이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서초구 서초동 잠원동, 올해 말 롯데타워 개장을 앞둔 송파구 신천동의 재건축 아파트도 시세가 최근 3개월 새 1억 원 이상 올랐다.
○ “부화뇌동(附和雷同)식 강남 투자는 위험”
부동산 업계는 최근 강남 재건축의 수요층이 넓어진 데 주목한다. 자금 여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30, 40대나 서울 외곽의 전·월세입자들도 ‘강남 투자’에 나서고 있다는 게 공인중개업계의 말이다.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7억 원 넘는 대출을 끼고 10억 원대 아파트에 투자하려는 신혼부부들도 종종 있다”고 전했다.
이런 움직임은 기준금리 1%대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비롯됐다. 저금리로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이 부동산 시장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입지 경쟁력이 높아 가격 상승 기대감이 큰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이 ‘안전 자산’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편 일각에선 ‘지금 시세가 상투’라는 경고의 목소리도 들린다. 위례신도시 입주 등의 영향으로 강남 지역 아파트의 전세금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강남 4구(강남 강동 서초 송파구) 전세금은 지난달 둘째 주 이후 5주 연속 하락 중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전세를 끼고 고가 아파트를 사들였던 ‘갭(gap) 투자자’들이 한꺼번에 매물을 내놓을 수 있다.
박상언 유엔알컨설팅 대표는 “정부가 주택담보대출 등을 까다롭게 하는 규제를 추가로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며 “집값의 60% 이상을 자기자본으로 확보한 상태에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호성 기자 thous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