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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장택동]박 대통령의 프레임 전쟁

입력 | 2016-08-23 03:00:00


장택동 정치부 차장

옛날에 분홍색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핑크대왕 퍼시’가 있었다. 자기가 입고 있는 옷, 백성들의 가구까지 분홍색으로 통일했고 심지어 나무와 풀까지 분홍색으로 염색했다. 하지만 하늘의 파란색만은 바꿀 수가 없었다. 그는 분홍색 렌즈를 끼운 안경을 쓴 다음에야 비로소 만족했다.

서울대 최인철 교수의 책 ‘프레임’에 나오는 서양의 한 동화 내용이다. 프레임은 흔히 ‘세상을 보는 창(窓)’으로 비유된다. 최 교수는 “우리는 프레임이라는 마음의 창을 통해 보게 되는 세상만을 볼 뿐”이라고 프레임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만 눈에 띄고, 아이를 둔 부모의 눈에는 세상이 온통 위험해 보이는 이치다.

정치에서 프레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국민은 자기가 보고 싶은 프레임으로 정치적 사안을 바라보고, 그에 따라 정치인의 운명이 좌우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형성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온 힘을 쏟는다.

박근혜 대통령도 요즘 민감한 사안들을 국민이 어떤 프레임으로 바라볼지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 같다. 이는 남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상당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프레임 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대표적 사안은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의혹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다. 그 본질은 우 수석이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불법 행위를 저질렀느냐는 점이겠지만 정치 공방으로 진화하면서 프레임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청와대는 이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 의혹을 ‘국기 문란’이라고 비판하면서 ‘정권 흔들기’ 프레임을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 참모들은 “우 수석 개인의 거취 문제로 한정하지 말고 저변에 어떤 세력이 움직이고 있는지를 봐 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측은 ‘본말 전도’ 프레임으로 맞서고 있다. 박 대통령이 옹호하는 우 수석을 지키기 위해 청와대가 본질을 흐리려고 이 특별감찰관을 압박하고 있다는 취지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논쟁도 프레임 대결로 귀결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국민과 국가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안보·애국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다. 반면 야권은 “우리에게는 실익이 없고 미국 중국 북한에만 이익이 된다”는 ‘안보외교 실패 프레임’으로 맞서는 형국이다.

프레임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각 진영은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누가 승자가 될지 지금으로선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경쟁하는 프레임 중에 어느 쪽이 살아남을지는 일단 ‘팩트(사실)’가 주요 변수가 될 것이다. 예를 들어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우 수석 또는 이 특별감찰관의 결정적 비리가 확인된다면 저울의 추는 한쪽으로 기울 것이다. 언론의 보도 방향, 정치권의 움직임도 프레임 형성에 영향을 주는 요소가 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내세우는 또 하나의 프레임이 ‘할 수 있다’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펜싱 에페 결승전에서 박상영 선수가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게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박 대통령은 “지금 우리나라에 가장 필요한 정신이 ‘해낼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11일 새누리당 지도부 오찬) 등 기회 있을 때마다 ‘할 수 있다’를 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정신력만 강조하는 낡은 구호”라는 취지의 비판도 나오지만 긍정적 프레임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공감이 간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열대야처럼 답답한 기운이 가득한 우리 사회가 ‘긍정의 힘’으로 조금씩 바뀌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장택동 정치부 차장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