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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의 한국 블로그]야생으로 돌아가는 몽골의 휴가

입력 | 2016-08-23 03:00:00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

8월 중순이 지나 하순에 접어들었는데 아직도 폭염경보 문자가 오고 오늘도 서울의 기온은 35도를 넘어서고 있다. 도로 양편의 가로등 기둥도 뜨거울 텐데, 가서 그걸 안으면 전기통닭구이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다. 우리 집은 산 옆이라 지난 2년간 에어컨을 몇 번 켜지도 않고 여름을 지냈다. 급기야 실외기가 산이 보이는 조망을 가린다는 이유로 봄에 에어컨을 떼냈는데, 이번 여름에 굴복해 다시 만만치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에어컨을 달았다.

광복절이 지나면 뜨거운 여름은 지나가리라는 주변의 예상과 위안이 무색하게 아직 사람들과의 인사는 더운 날씨에 대한 얘기로 시작한다. 여름휴가를 위해 일주일 넘게 콘도를 찾아보다 포기했다. 올해 따라 회사의 여름 출장도 9월까지는 계획이 없단다. 몽골은 벌써 기온이 15∼20도쯤 되는 초가을 날씨라는데, 문득 선선한 몽골의 가을이 그립기도 하다.

몽골의 근로자들은 1년에 15일 공식 휴가를 받을 수 있다. 여기에 6년 이상 근무하면 추가 휴가를 받을 수 있어 한국에 비해 휴가가 긴 편이다. 여름이 다가오는 6월 초, 아이들은 방학이 시작되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때쯤 여름 별장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여름 별장이 없으면 빌려서 사용해도 된다. 그렇게 여름이 시작된다. 7월 초쯤 되면 여름휴가를 떠나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몽골에서도 국내 여행이 유행이다. 국토가 한국의 15배쯤 되는데 고속도로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지 않기도 하고, 개발 관광지보다는 자연 그대로를 느끼고 즐기려는 경우가 많아 몽골 사람들은 한국보다 좀 더 사방팔방으로 국내 여행을 가는 것 같다.

올해 초 인구가 300만 명을 넘어선 울란바토르 시내를 제외하면 도로가 막히는 일도 거의 없다. 단, 도시를 벗어나면 가로등이 거의 없고 포장되지 않은 길이 대부분이라 길을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 밤에 가로등이 없는 깜깜한 시골길을 가는 것은 위험하다. 길을 한번 잘못 들면 다시 찾기가 쉽지 않다. 요즘은 내비게이션 쓰는 사람들도 있어서 상황이 나아졌지만 출발 전에 세심한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은 여전하다.

여행을 떠나면 여러 곳을 돌아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한 번에 모든 지역을 경험하기는 힘들어 동남쪽, 서북쪽 등 나눠서 가는 게 보통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남쪽으로 550km 가면 고비 사막이 있다. 고비 사막은 길이가 1600km, 폭이 평균 600∼700km에 이르는 넓은 지역이다. 몽골어로 고비는 ‘물이 없는 곳’ 또는 ‘거친 곳’이라는 뜻이다. 겨울에는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고, 여름에는 50도에 육박할 정도다. 사막에서 보름달이 뜨는 장면을 보면 평생 잊지 못할 낭만적인 추억으로 남는다고 한다. 보름달과 함께 별들이 쏟아질 듯한 은하수를 보며 끝을 알 수 없는 모래밭에 누워 있으면 마치 별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모래 슬라이딩, 캠핑 등을 경험해 보거나 ‘허르먹’ ‘아에륵’ 등 낙타 젖으로 만든 음료나 주류를 맛보고 싶으면 현지 여행사를 통해 가이드와 함께 출발할 수 있다.

몽골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내륙 국가라 바다는 없지만 호수나 강에서 잡은 민물 생선을 먹는다. 북쪽으로 가면 훕스굴 호수가 있다. 훕스굴 호수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깊은 호수로, 지구상에 있는 모든 물의 0.4%가 들어 있다고 한다.

차를 타고 동쪽으로 가면, 몇 시간을 달려도 언제 끝이 나올까 싶은 초원을 볼 수 있다. 지평선을 보면서 자연에 몸을 맡기고 생활하다 보면 도시인에서 자연인으로 변한다. 바쁜 도시생활에서는 쓰지 않던 근육들과 내 마음속의 숨겨졌던 감정을 되살려 보는 소중한 휴가가 될 수 있다.

에어컨 켜는 게 부담이 되는 사람들이 아직 주변에 많다. 뜨거운 낮 시간이 되기 전에 집을 나서 하다못해 지하철역이나 은행, 도서관에 부지런히 가는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가을이 왔으면 한다.

이라 몽골 출신 다문화여성연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