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화 KAIST 교수
이런 우려는 ‘노동 총량 불변의 법칙’에 근거한다. 인공지능이 대체하는 직업들이 사라지는 만큼 새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상 기술혁신이 일자리의 총량을 줄인 증거는 없다. 1, 2, 3차 산업혁명의 교훈은 기술혁신이 산업 형태를 바꾸지만 전체 일자리를 줄이지 않았다. 기계와 정보기술(IT)로 생산성이 증가해 기존 일자리들은 사라져도 시장에서 새 수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차 산업혁명은 물질의 양적 생산성을 증대했다. 80%의 농업 인구가 하던 일을 기술혁신으로 2% 농업 인구가 대체하고 78% 인구는 산업인력이 됐다. 2차 산업혁명은 자동차, 냉장고 등 물질적 욕망을 충족시켰다. 당시 미국에선 제조업 일자리의 3분의 2가 서비스 업종으로 대체됐다.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사회적 연결 욕구를 만족시켰다. 사라진 직업들은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자리 등으로 대체됐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제시한 생존, 안정, 사회성, 자기표현, 자아실현이라는 욕구의 5단계설을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을 검토해 보자. 1, 2차 산업혁명은 1, 2단계인 생존과 안정 욕구를 충족하는 물질혁명, 3차 산업혁명은 3단계인 사회적 욕구를 충족하는 연결혁명이었다. 그렇다면 4차 산업혁명은 4, 5단계인 자기표현,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하는 혁명이다. 결국 로봇과 인공지능에 재화와 서비스 생산을 위탁한 인간은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인문의 혁명에 돌입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에서 새 일자리는 인간의 자기표현 욕구에서 비롯된다. 개인의 소비가 정체성을 결정하는 ‘경험경제’가 도래하고, 물질이 아니라 시간이 중요한 자원이 된다. 또 산업혁명 때 분리됐던 생산·소비가 고효율의 집단지능으로 결합하는 ‘디지털 DIY(Do It Yourself)’가 일반화된다. 또 자아실현에 도전하는 기업가적 인재들이 주축이 될 것이다.
미래엔 인공지능과 로봇 등 초생산을 담당하는 과학기술 인재와 개인의 협력적 소비를 담당하는 놀이와 소비의 인재, 생산과 소비의 분배 구조를 담당할 사회적 인재가 필요하다. 과학기술, 인문학, 경제사회의 초융합이 4차 산업의 본모습이다.
이민화 KAIST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