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이 험난했던 인생 역정과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김상철 전문기자
1970년 고졸 공채 1기로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포항제철소 터 조성 공사를 위한 영일만 준설선에 처음 배치됐다. 배에서 먹고 자며 낡고 침수돼 고장 난 엔진과 발전기 등을 수리했다. 이어 인천 저유소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본사 기계부로 옮겼다.
공석인 부장 역할까지 하던 과장이 갑자기 현대조선소(현 현대중공업)로 발령 났다. 과장 대리로 정주영 회장과 정인영, 이명박 사장에게 결재를 받으러 다녔다.
정 회장이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고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하는지 배웠다. 일류대학 경영학석사(MBA) 과정보다 더 귀중한 경험을 하며 안목을 키웠다. 큰 행운이었다.
직속 임원이 배려해줘 야간 대학에 다녔다. 1979년 한양대 기계공학과를 마친 뒤 사표를 냈다. 해외 건설 현장에 가면 봉급이 많았다. 현대그룹이 급성장하는 때여서 자동차, 조선 등 계열사로 옮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직장생활로는 대물림되는 집안의 가난을 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 계획 없이 용기를 낸 데는 소 판 돈을 갖고 집을 나와 쌀 배달부터 시작한 정 회장에게 받은 영향이 컸다. 길을 찾으면 자신에게도 열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족 생계가 급해 경기 안양에 뉴욕제과 분점을 내 아내에게 맡겼다.
사업 아이템을 찾으려고 돈이 모인다는 서울 남대문시장, 용산 청과시장, 노량진 수산시장 등을 살폈다. 모두 새벽시장이라 적응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한동안 사업거리를 못 찾아 다시 취직할까 고민했다. 청계천에 공구를 사러 갔다가 현대건설 근무 때 공구를 납품하던 영업사원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독립해 공구 장사를 시작했다며 동업을 제안했다. 주위에서 동업은 오래 못 간다고 조언했다. 시장 특성을 몰라 혼자 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각자 사업자 등록을 하는 대신 시장을 파악할 때까지 도와주면 이익 일부를 주기로 했다.
공구상을 친척에게 넘기고 1983년 석원산업을 창업해 플랜트 공사에 나섰다. 정석현 수산그룹 회장(64) 이야기다.
친정인 현대건설을 찾아 근황을 얘기했다. 옛 상사가 영광 원자력발전소 배관공사 일부를 맡겼다. 처음 하는, 어려운 작업이라 경험 있는 기술자를 영입했다. 현장에 나가 모든 시공 내용을 꼼꼼히 기록했다. 완공 후 데이터를 분석해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줄이고 안전도를 높이는 비결을 찾아냈다.
현대건설이 턴키로 처음 수주한 이라크 화력발전소 건설에 참여했다. 이를 위해 전문건설업체 1호 해외건설업 면허를 취득했다. 실적이 쌓이자 대림산업, 한국중공업 등이 일감을 줬다. 수많은 국내 원전과 화력발전소, 해외 플랜트 공사를 한 뒤 원전을 유지·보수하는 정비사업에 진출했다.
2004년 법정관리를 거쳐 매물로 나온 건설장비업체 수산중공업을 인수했다. 130여 개에 이르던 제품 수를 60여 개로 줄이고, 해외 시장 개척과 기술력 향상에 주력했다. 유압브레이커, 유압드릴, 트럭 크레인 등의 품질이 높아지자 3년 만에 매출이 2배로 늘었다.
정 회장은 맨손으로 시작해 5개 계열사를 둔 연매출 3000억 원대 중견그룹을 일궜다. 독일 히든챔피언처럼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추고 지속 성장하는 일류 강소기업을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김상철 전문기자 sckim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