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수의 느닷없는 개입, 우병우 둘러싼 정치적 논란을 법적 유무죄 다툼으로 바꿔 고발에 이르지 못한 수사의뢰… 언론의혹 전달 수준에 불과하나 결국 박근혜 정권의 자업자득… 우병우 사퇴하고 조사받아야
송평인 논설위원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존재조차 잊고 있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느닷없이 끼어들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다툼은 법적 유무죄의 문제로 바뀌었다. 그것도 우 수석의 본건(本件) 의혹이 아닌 별건(別件) 의혹에 대한 법적 유무죄의 문제로 바뀌었다. 무엇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냐는 한쪽이 완전히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다. 법적인 문제가 되면 유죄이거나 무죄이거나 둘 중 하나다. 액체적인 정치적 사건을 고체적인 법적 사건으로 만든 것이 그의 어리석음이다.
법적인 유무죄만 다뤄온 상상력 부족한 검사가 제1호 특별감찰관에 임명됐다. 그는 자기 직무영역에 들어온 의혹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자 누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도 뭔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혔다. 정작 진경준 인사 검증 실패나 진경준을 매개로 한 서울 강남땅 매매라는 본건은 감찰 대상도 아니었다. 그러자 그는 돈키호테처럼 본건이라는 괴물 대신 별건이라는 풍차를 향해 돌진했다. 어느 기자가 산초가 돼 ‘칼을 뺐다가 그냥 집어넣으면 당신이 다친다’며 부추겼을 수도 있다. 아니면 검사 시절부터 몸에 밴, 본건 수사가 안 되면 먼지떨이식 별건 수사를 해서라도 반드시 기소한다는 못된 습관이 발동한 것일 수도 있다.
그는 감찰에 진전이 없었던 이유가 우 수석의 영향권 아래 있는 기관들의 비협조 때문이라는 불만을 토로했다. 그렇다면 감찰에 협조적이지 않았던 경찰부터 우 수석까지 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는 감찰 방해 행위로 고발하는 것이 우선일 텐데 그러지도 않았다. 사실 압수수색도 계좌추적도 못 하는 특별감찰관이 얼마나 협조를 얻어야 진상을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에게는 우 수석이 혐의가 있다는 쪽으로도, 혐의가 없다는 쪽으로도 진상을 파악할 능력이 없었다. 그것이 그가 감찰에 착수했을 때 빠져들었던 함정이다. 그는 고발도 무혐의 처분도 할 수 없었다. 그에게 출구는 ‘모르겠으니 검찰이 수사해 달라’는 길밖에 없었다.
그에 의해 우 수석의 의혹에 대해 완전히 다른 그림이 그려졌다. 본래 이 그림의 근경(近景)에는 우 수석 처가의 서울 강남땅 매매가 있고 의경 아들 꽃보직 특혜니 가족기업 ‘정강’의 회삿돈 유용이니 하는 것은 원경(遠景)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 원경에 있던 것이 근경을 차지하고 근경에 있던 것이 원경으로 밀려났다.
우 수석이 꼭 물러나야 국정이 잘될 것이라는 주장도 아집에 불과하고, 우 수석이 꼭 있어야 국정이 잘될 것이라는 주장도 아집에 불과하다. 기싸움의 뒷면에서는 양쪽에서 다 음습한 공작의 냄새까지 풍긴다. 그래도 겉으로나마 정치적 올바름을 놓고 공방할 때는 서로 압박에 밀려 물러선다는 인상을 주지 않고 물러설 방법을 모색할 여지가 있었다. 그런데 제가 뭘 할 수 있는지도, 또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특별감찰관이 끼어들면서 사태는 한쪽이 져야 끝나는 정면대결로 치닫게 됐다.
지난 대선에서 특별감찰관제를 공약으로 내건 것도, 특별감찰관법을 만든 것도, 이 특별감찰관을 1호 특별감찰관으로 임명한 것도 박근혜 대통령이다. 이 정권의 누구 하나 특별감찰관제가 어떻게 기능할지 예상이나 했던가. 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면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우 수석이 자리에서 내려와 모든 의혹에 대해 결백을 입증하는 수밖에 없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