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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활의 시장과 자유]‘레전드의 길’ 오승환과 이치로

입력 | 2016-08-24 03:00:00


권순활 논설위원

이달 15일(한국 시간)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시카고 컵스 홈구장인 리글리필드. 6 대 3으로 앞서던 원정팀 세인트루이스가 8회말 수비에서 솔로홈런을 맞아 6 대 4로 쫓기자 마이크 머시니 감독은 마무리투수 오승환을 바로 마운드에 올렸다. 오승환은 1과 3분의 2이닝 동안 삼진 네 개를 빼앗으며 무실점으로 팀의 승리를 지켰다. 그의 활약은 인터넷 실시간 검색 최상위권에 올랐다.

특급 마무리와 3000안타

이보다 1주일 전인 8일 마이애미의 외야수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통산 3000안타의 위업을 달성했다. 일본 오릭스에서 MLB로 옮긴 뒤 16년 만에 세운 대기록이다. 이날 오전 이치로의 안타가 터지자 일본 열도는 열광했다. 유력지 아사히신문이 호외 발행에 이어 석간에서 1면 머리기사 등 3개 면에 걸쳐 상세하게 소개할 정도였다.

메이저리그는 야구인들에게 ‘꿈의 무대’다. 명예와 부(富)를 좇아 전 세계에서 몰려온 스타들이 즐비하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자리를 잡긴 쉽지 않다. 내로라하는 거포(巨砲)인 미네소타의 박병호와 시애틀의 이대호가 마이너리그로 밀려난 것은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을 실감케 한다.

오승환은 한국 선수 중에서 단연 돋보인다. 한국 삼성과 일본 한신의 ‘수호신’을 거쳐 올해부터 세인트루이스에서 뛰는 그는 시즌 초 중간계투 투수로 출발한 뒤 7월부터 마무리를 맡았다. 어제까지 61게임에 등판해 3승 2패, 12세이브 14홀드, 평균 자책점 1.82, 최근 7게임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닷컴은 “오승환은 올해 가장 놀라운 메이저리거 중의 한 명”이라고 평가한다. 특급 끝판왕으로 손색이 없다.

이치로는 이미 정상의 경지에 올랐다. 일본 리그에서 7년 연속 타격왕을 기록한 뒤 28세 때부터 미국에서 뛰고 있다. 역대 메이저리그 3000안타 기록을 가진 30명 중 가장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거의 길을 시작했다. 아시아 출신 중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를 것이 확실시된다.

오승환과 이치로는 프로생활 초기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피나는 연습으로 시간이 갈수록 꽃을 피웠다. 공식 구속(球速)보다 더 무게감이 느껴지는 돌직구(오승환)나 빠른 발을 활용한 내야안타(이치로)처럼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어냈다. 경기장에서 표정 변화가 적고 웬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두둑한 배짱도 공통점이다.

야구 중계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레전드(Legend·전설)’란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국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평가할 만한 스타도 있지만 아시아를 넘어 세계 수준에서도 인정받는 선수가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이치로는 글로벌 레전드의 자리를 굳혔다. 오승환도 지금 흐름이라면 진정한 레전드의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올해 34세인 오승환과 43세인 이치로의 대활약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점도 일깨워준다.

‘아시아의 기회’ 넓어질 것

한국과 일본은 역사가 남긴 상처 때문에 ‘가깝고도 먼 나라’로 불린다. 하지만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면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이 더 눈에 띄는 동북아 국가다. 우리도 독일인과 프랑스인을 같은 유럽인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오승환과 이치로가 맞대결을 하면 나는 당연히 오승환을 응원할 것이다. 그런 경우만 아니라면 두 선수의 동반 활약이 이어져 메이저리그의 레전드로 오래 기억되기를 바란다. 오승환과 이치로가 함께 잘할수록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치려는 한국 일본 등 아시아의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문’이 넓어질 수 있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